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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름다우나 감정을 자아내기에는 역부족, <봄의 눈>
장미 2006-10-17

그들은 아름다우나 감정을 자아내기에는 역부족.

봄의 눈은 찰나의 존재라 눈길을 끌지만 한편으론 더없이 불길한 징조다. “아름다운 것일수록 명이 짧지요.” 봄을 휘감는 눈발, 주검으로 남은 검은 강아지와 나비로 암시되던 <봄의 눈>의 세계관은 청순한 미모를 빛내는 여주인공 아야쿠라 사토코(다케우치 유코)의 목소리에서 꽃눈을 틔운다. 천천히 피어나던 다이쇼 시대의 사랑은 낯 뜨거울 정도로 활짝 만개하고 그것이 절정에 달한 순간 툭 고개가 꺾인다. 파경조차 눈부신 비극적인 사랑. <봄의 눈>의 향기는 바로 거기서 우러난다.

백작 가문의 사토코는 소꿉친구인 후작 가문의 마츠가에 키요아키(쓰마부키 사토시)를 마음에 품고 있다. 사토코의 간절감에도 아이처럼 잔인한 키요아키는 흥미없는 장난감 보듯 그녀를 대한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칭송받던 사토코의 미모는 황실의 심미안조차 만족시키고 거절에 지친 그녀는 왕자와의 혼약을 수락한다. 이때부터 키요아키의 속앓이가 시작된다. 은밀한 애정이 뒤늦게 목을 조여오자 젊기에 억누름을 모르던 키요아키는 서둘러 사토코를 품에 안는다. 황실마저 배반한 거침없는 사랑의 끝은 이별을 고할 새도 없이 급작스레 닥쳐온다.

<봄의 눈>은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불멸의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을 답습하는 고전적인 멜로물이다. 덧붙여진 것이 있다면 철저한 유미주의.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회화적인 풍광 속에서 비단 기모노나 서양 드레스를 갖춰입은 사토코가 완벽한 연모의 표정을 머금는다. 키요아키 역시 마찬가지다. 하얀 셔츠 위에 솟아오른 그의 얼굴은 지나치게 단정해 비현실적일 정도다. 격정에 휩싸여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두 인물은 극도로 정제된 미(美)의 화신이 된다. 관객이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그 지점이다. 사랑의 고통조차 가장 그럴듯한 형태로 박제된 이 영화에서 감정을 쏟아낼 틈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낭만주의가 팽배했던 1910년경 일본을 배경으로 한 <봄의 눈>은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 중 제1권 <봄의 눈>을 토대로 탄생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통해 시한부 사랑을 그렸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다시 한번 능력을 발휘하고자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쓰마부키 사토시가 운명에 좌절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 역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즐긴 사람이라면 낯선 감격이 아니다. <봄의 눈>은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새로운 물결 10년, 그리고 현재’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일본에서는 2005년 10월29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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