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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7] - 이숙연
이영진 사진 이혜정 2006-10-19

<봄날은 간다><불꽃처럼 나비처럼> 작가 이숙연

부족한 2%를 채우는 마음으로

영화사에서 꺼려하는 시나리오작가들의 부류는 대개 이렇다. 먼저, 함흥차사형. 정해진 날에 시나리오를 토해내기로 하고서 감감무소식이다. 또 하나는 멋대로형. 작업 포인트에 합의해놓고서 정작 가져오는 결과물은 완전히 딴판이다. 시나리오작가는 킬러와 비슷하다. 목표를 앞에 두고 미적대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덤벼드는 킬러에게 의뢰가 쏟아질 리 없다. 이숙연이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건 ‘감성이 뛰어난 멜로 전문 작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와 함께 작업한 한 영화인은 “말처럼 쉽지 않은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왔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고 전한다.

성실은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라디오 방송작가로서 15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 일을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뭔가 쓰는 게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그는 지금도 아침 6시30분이면 일어나 <유열의 음악앨범> 대본을 쓴다. 시나리오를 집중해서 쓸 수 있는 건 방송이 끝나는 오전 11시부터 초등학생 아들이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몇 시간이 전부다. 그러니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건 죄악이다. “글 쓰고, 애 키우고, 다행히도 단순한 삶이 지루하지 않다. 대학 다닐 때도 수업 끝나면 곧장 집에 가서 라디오 듣고 책 보고 그랬다. 남들은 연애하는 줄 알았겠지만.”

우연이 인연을, 인연이 새 길을 만든다. 영화와의 만남도 예고없었다. ‘라디오 키드’였던 그가 불문과 졸업을 앞두고 선배를 만나러 방송사에 놀러갔다가, 마침 작가를 찾고 있던 제작진의 눈에 띄어 즉석 시험 보고 단번에 취업에 성공했던 것처럼 말이다. <봄날은 간다>를 맡게 된 건 단골 게스트였던 조성우 음악감독 때문. 방송사를 잘 아는 작가를 구하고 싶다는 허진호 감독의 고민을 전하면서 한번 도전해보라 했지만, 그는 “지문 쓰는 법도 모른다”며 처음엔 발을 빼려 했다. 그러다 말려들었다. 보름 만에 뚝딱 쓴 시나리오. “대사나 감성이 좋다. 처음 쓴 거 맞냐?”는 칭찬을 들었다.

<봄날은 간다>를 끝내고 그는 방송 일을 그만둬야 했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제의가 많았다. “잠깐 우쭐했던 때였다. 그러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또 제작이 여러 차례 미뤄지기도 했고. 그때마다 ‘나 때문 아닌가’ 자책했다. 첫 작업의 느낌이 매우 좋아서 덤빈 건데. 이럴 바엔 그냥 애 키우면서 조용히 살아야겠다 싶었다.” ‘고난 돌파 스타일’이 아닌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박흥식 감독. “어떻게 하면 안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라고 하더라.” <사랑해, 말순씨>에 긴급 투입됐던 그는 짧은 경험이었으나 충분한 대화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난 부족한 2%를 채워주면 되는 거였다. 대사 몇 마디든, 전체 구조를 바꾸든.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 게 문제였다.”

그가 쓴 작품들 중 <사랑해, 말순씨>를 제외하면 모두 멜로다. “정점을 향해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가는 장르”라 멜로를 좋아한다는 그는 현재 김용균 감독의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쓰고 있다. 야설록의 동명 소설이 원작. 명성황후를 사랑하는 무사 이야기다. “‘무협’멜로가 아니라 ‘멜로’무협이다. 갑자기 바다가 펼쳐지고, 무사들이 날아오르고, 그 사이에 뻔한 사랑 이야기를 끼워넣고 싶진 않다. 대결 하나에, 공간 하나에 감정과 정서가 밸 수 있도록 머리를 짜고 있다.” 초고를 쓰는 동안 ‘뇌지진’을 여러 번 겪었다지만, “어느 순간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또 한번의 짜릿한 경험”을 했다면서 행복한 표정이다.

막힌 대목, 이렇게 뚫었다!

무조건 혼자 뚫는다

“1신에서 15신 정도까지만 쓰면 속도가 저절로 붙는 편이다. 그런데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초반부터 막히는 게 많았다. 디테일이든 공간이든 묘사가 쉽지 않았다. 일상적인 상황이면 서랍 열고 디테일을 빼낼 수 있지만, 이건 그게 불가능했다. 사실 무협은 물론이고, 사극도 전혀 모른다. 그렇다고 찾아보기도 싫었다. 똑같은 걸 써낼까봐. 혼자서 뚫어야 했다. 작업 속도가 더뎌도 그렇게 했다. <파인딩 포레스터>에 나오지 않나. 초고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그래야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으니까. 다행히 10년 넘게 무협광을 자처해온 남편이 초고 보고 ‘모르는 사람이 더 무섭군’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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