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될 기회는 천년에 단 한번 찾아온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너무나도 어수룩한 아버지(주현),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 과격하고 정신없는 아들(하정우), 항상 발정난 상태로 남자들만 호시탐탐 노리는 첫째딸(박시연), 예쁜 아이의 얼굴을 둘러썼지만 의심스러운 행동이 잦은 막내딸(고주연). 천년째 되는 날 인간의 간을 먹고 완벽한 인간으로 변신하기를 꿈꾸는 구미호 가족은 인간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커스장을 개업한다. 그러나 피와 살점이 튀는 사지절단쇼가 군중을 끌어들일 리 만무하다. 다른 방도를 찾아 헤매던 가족에게 여자들의 몰래카메라를 찍어서 팔아먹는 사기꾼 기동(박준규)이 우연히 흘러들어온다. 첫째딸과 합방을 한 기동은 곧 이들 가족이 구미호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변신장면을 카메라로 몰래 찍어 한몫 챙길 궁리를 한다. 이제 구미호 가족은 기동의 제안으로 서커스단 모집 공모를 내 싱싱한 간을 가진 인간들을 끌어들이려 한다.
<구미호가족>은 익숙한 구미호 설화를 뮤지컬과 코미디로 풀어낸 혼성 장르영화다. 뮤지컬의 전통이 부재한 한국에서 ‘한국적 뮤지컬’을 스크린에 담으려는 시도 자체는 대담하기 짝이 없다. 제작진은 대담한 시도를 결실로 맺기 위해 오랫동안 기술적인 부분들을 준비했고, 결과물인 포장지의 때깔은 꽤나 먹음직스럽다. 25분에 달하는 뮤지컬 장면의 편집, <히노키오>(2005)의 아키야마 다카히코가 담당한 특수효과, 전은정 미술감독의 세트는 크게 흠잡을 곳 없이 유려해 보인다. 공들인 흔적이 엿보이는 장르적 도전은 충무로의 갑갑하고 협소한 세계 속에서 꽤 드문 일이며, 그런 점에서 <구미호가족>의 시도에는 칭찬이 필요하다.
하지만 <구미호가족>의 실험은 실험에 그친다. 문제는 공들인 각각의 분야가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 조화롭게 기능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순풍 산부인과>의 전현진 작가는 시트콤적인 유머 감각을 스크린에 도입하는 데 종종 실패하고, 영화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뮤지컬 부분은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캐릭터의 감정을 구축하는 데 제 몫을 해내지 못한다. 감독과 안무가, 음악감독은 “전통적인 뮤지컬영화가 아닌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지만, 배우들의 느슨한 안무와 오래 기억될 만한 훅이 없는 스코어는 딱딱하고 허술하다. <구미호가족>은 장르적 실험을 위해서는 장르에 대한 탄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또다시 입맛 쓰게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