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인구성장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러 국가적으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치던 그때, 충북 정선군 금내면 용두리에 가족계획요원 박현주(김정은)가 찾아온다. 그녀는 전국 1위를 자랑하는 이곳의 출산율을 낮춰야 할 임무를 띠었다. 그러나 마을 유지인 강 이장(변희봉)을 비롯해 보수적인 주민들은 반감부터 나타낸다. 네 아이를 힘겹게 부양하는 변석구(이범수)만이 마음을 열고 그녀를 돕기 시작한다.
<잘살아보세>는 한때 유행처럼 복고풍을 지향하던 한국영화가 간과했던 시절로부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풀어놓는다.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이 속행되고 이른바 ‘선진의식’ 없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집단 계몽이 이뤄지던 시대. 도시와의 격차가 무한대로 커지는 가운데 저개발국가의 낙후된 풍경이 전부였던 농촌을 배경으로, 이 영화는 인정으로 뭉친 가난한 공동체이자 봉건적 계급문화의 잔재로 불평등과 불합리에 눌려 살던 서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접근하려는 의욕을 초반부에 드러낸다. 그러나 이야기는 농촌코미디로 시작해 좀처럼 파악하기 힘든 주제의식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장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피임약과 콘돔쓰는 법 가르치기’ 장면들이 만드는 섹스코미디, 강 이장의 정신지체(로 추청되는) 아들 창혁(우현) 등장신의 호러, 변석구와 그의 아내 사이에 벌어진 애달픈 치정극 그리고 최종적으론 전통사상과 근대의식의 화해를 통한 휴먼드라마다. 감독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박현주의 대사를 빌리자면 이것이 아닐까. “아이를 적게 낳으면 잘살 수는 있겠지만, 그게 행복한 삶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칭찬받아 마땅한 점은 김윤수 촬영감독(<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선생 김봉두>)과 전인한 미술감독, 윤병진 아트디렉터 등이 다 함께 필름에 담아낸 마을 용두리다. <잘살아보세>는 국가적 계몽운동으로 풍비박산날 뻔한 농촌 가정의 부활기이자, 불화와 대립을 극복한 한국사회의 공동체의 미담이며, 무작정 근대화를 추종했던 시골 출신 여성의 성장기이다. 시대상이 만든 여러 대립각을 끌어오면서 근대화를 수용하고 전통을 인정하는 건강한 결론에 이르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투쟁의 대상이 근대화와 보수사상, 문맹과 계몽을 아무 기준없이 오간다는 게 문제다. 입체적인 프로덕션디자인과 주·조연배우들의 농익은 열연이 무색하게도, <잘살아보세>는 모든 문제의식을 끌어안고 내달리다가 뭉툭한 휴머니즘 앞에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