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로 태어났으면 까짓 거 악셀 한번 밟아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인생도 예술로 한번 살아보고.” 한때 평범하게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고니(조승우). 이제 전설의 타짜 평경장(백윤식)에게 사사받은 손기술 좋은 노름꾼이 되어 있다. 도박판에서 홀라당 까먹은 누나의 이혼 위자료를 되찾고, 자신의 삶을 어그러뜨린 박무석 일당에게 복수하는 데도 성공하지만, 고니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다. 더이상 노름에 손대지 말라는 평경장의 경고를 뒤로하고 고니는 고광렬(유해진)과 함께 정 마담(김혜수)을 따른다. 목숨까지 내걸고 화투패를 쪼며 인생을 태우는 타짜들의 세계에서 고니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타짜>의 승부수는 캐릭터다. 내러티브 흐름에 다소 걸림돌이 된다고 해도, 영화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 표현을 멈추지 않는다. 단적으로 원작의 장점을 극대화한 영화의 형식이 그걸 보여준다. 1장 ‘낯선 자를 조심해라’를 시작으로 박무석, 평경장, 정 마담, 고광렬, 곽철용, 아귀 등 고니의 삶과 욕망에 계기가 되고 자극이 되고 발판이 되고 덫이 되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평경장의 죽음에 고니는 분노하지만 곧바로 복수의 대상을 찾아나서지 않는다. 대신 욕망을 밑천삼아 도박판을 어슬렁거리는 타짜들을 만날 따름이다. 꼬인 플롯과 빠른 편집으로 관객을 혼란에 빠뜨는 동시에 캐릭터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려고 했던 <범죄의 재구성>(2004)의 ‘접시돌리기’와는 사뭇 출발점이 다르다. 캐릭터‘들’에 한발 더 다가선다.
따라서 주인공이 절대고수를 상대로 복수혈전을 벌인다는 식의 무협차용 도박물을 예상한다면 영화는 다소 맥빠지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짜>의 관심은 누가 ‘판돈’을 거머쥐느냐가 아니라 그들은 왜 화투패를 버리지 못하는가 하는 점이다. 고니가 화투판의 설계자인 정 마담, 인정사정 없는 아귀와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보라.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앞의 여섯번의 화투판보다 유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다만, <타짜>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진 않는다. <범죄의 재구성>이 짜맞춰야 하는 영화라면, <타짜>는 채워야 하는 영화다. 혹여 2시간19분의 묘사만으로 고니와 타짜들의 배고픈 욕망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면 원작과 감독의 전작을 다시 들춰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