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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 대한 눈높이 해설서, <댈러웨이 부인>
박혜명 2006-09-26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원작에 대한 눈높이 해설서. 원작과 함께 감상하기를 추천함.

클라리사 댈러웨이(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저녁에 있을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꽃을 사러 가기로 한다. 그녀에겐 파티를 열어 사람들에게 하룻밤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 삶의 큰 낙이다. 꽃을 사러 가는 길에 클라리사는 어린 시절을 부어톤에서 함께 보냈던 소꿉친구와 조우한다. 덕분에 옛 생각에 빠져든 클라리사 앞에 그녀의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피터 월시(마이클 키친)가 나타난다. 당시 열여덟살의 클라리사(나타샤 맥엘혼)는 자신이 피터에 대해 가진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그녀는 흥겨운 파티와 안정적 미래를 원하는 철없는 숙녀였던 반면 피터는 모험심 많고 시대비판적인 젊은이였다. 클라리사는 피터의 청혼을 “당신은 나에게 원하는 게 너무 많아”라며 거절했더랬다. 정치가를 꿈꾸는 남자 리처드 댈러웨이를 선택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클라리사에게 물밀듯 찾아든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가 1925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굳이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원작을 말하면 <댈러웨이 부인>은 정치가 남편을 둔 50대 주부가 저녁 사교모임을 준비하는 어떤 날의 이야기다. <등대로>(1927), <물결>(1931)과 같은 울프의 다른 책들처럼 <댈러웨이 부인>은 시끌벅적한 사건사고의 기록이 아니라 인물의 의식의 섬세한 흐름과 심리적 변화를 적은 글이다. 장면의 구분이라고 할 만한 끊어짐은 있으되 챕터의 구분은 없는 한 덩어리의 글이다. 그 같은 과감한 형식 속에서 작가는 주인공 클라리사와 피터의 생각을 열쇠 삼아 이야기의 현재와 과거를 마음껏 넘나들다가 ‘과거가 어떻게 현재를 만들었건 주어진 삶은 예찬받을 만한 것’이라는 희망찬 결론에 이른다. 이 원작에는 클라리사와 전혀 상관없는, 셉티머스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의 이야기가 병렬배치돼 있다. 참전 후유증으로 심리적 불안정을 겪는 그는 클라리사의 세계와 최소한의 접점만을 갖다가 마지막 순간 그녀의 의식 안으로 깊이 침투한다. 울프가 말하는 생에 대한 감격과 의지는 예쁜 아내를 두고 자살한 이 남자의 비극으로부터 역설적으로 유도된 것이기도 하다.

마를린 고리스 감독의 <댈러웨이 부인>은 이 원작에 매우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감독은 원작의 이야기 전체와 울프의 세계관, 울프의 인물들을 거의 훼손하지 않고 고스란히 영화에 옮겨왔다. 원작의 따옴표 속 말들을 대사로 옮긴 것은 물론 각색 과정에서 셉티머스의 이야기와 플래시백을 배치하는 원작의 구성도 전혀 망가트리지 않았다. 이 틀을 기반으로 감독은 버지니아 울프식 글쓰기를 영화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이 영화의 흐름은 원작의 문장을 그대로 활용한 보이스오버 내레이션과 여배우들의 표정 풍부한 클로즈업 장면, 시청각적 감각 등을 통해 자유롭게 이어지고 교차된다. 그것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이름 붙여진 원작의 글쓰기 방식을 쉽게 연상시킨다. 게다가 감독은 원작에서 마주치는 작은 순간들의 분위기와 느낌마저도 그대로 영화화하고자 했다. “‘피터! 오늘 저녁 파티를 잊지 마세요!’ 하고 그녀는 소리쳤다. (중략) 피터가 문을 닫고 있을 때에 ‘오늘 저녁 파티를 잊지 마세요’ 하고 그녀가 외친 음성은 거리의 소음과 시계 치는 소리에 눌리긴 했지만, 희미하고도 약하게 멀리 퍼졌다.” 만약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의 이 대목을 읽는다면, 놀라울 것이다. 왜 피터가 클라리사네 저택 문을 열고 황급히 나갈 때 모습이 절반쯤 프레임 밖으로 잘린 상태에서 다시 보여지는지, 왜 그 순간 화면의 여백은 그렇게 컸고 클라리사의 목소리는 화면 밖에서 가볍게 울렸던 것인지. 모든 게 한번에 이해가 될 테니 말이다.

바꿔 말하면 영화 <댈러웨이 부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원작이 꼭 필요하다. 원작보다 나은가 못한가를 논하는 건 이 경우에는 별 의미가 없다. 울프의 원작은 영화를 필요로하지 않지만, 고리스의 영화는 원작이 있어야 완성되는 남은 반쪽의 하트 조각과 같다. 그게 없으면 이 영화는 플래시백과 주변 인물을 통해 그려진 옛 시대 배경의 한 여자의 세월 그 이상이 되기 어렵다. 물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생생한 눈빛과 설렘 가득한 표정을 보는 것은 별도의 감상 수확이다. 절망, 희열, 설렘, 혼란 따위의 감정을 변화무쌍하게 겪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여성으로서 레드그레이브의 클라리사는, 나타샤 맥엘혼이 연기한 젊은 시절의 클라리사보다 몇 백배 매력적이다.

고리스의 영화는, 인물들의 멈추지 않는 생각으로 꽉 차 있어 정적이고 다소 침울한 원작에 비해 훨씬 동적이며 밝다. 어린 클라리사의 캐릭터를 표현한 순백색의 드레스, 그 모습을 푸른 정원과 함께 필터 촬영으로 담아낸 화면, 언제나 햇살을 받으며 빛나는 런던의 거리 등은 원작에 담긴 희망적 결론을 더욱 화사하게 부풀려내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영화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심도있는 해설서도 아니다. 마이클 커닝엄이 쓴 <세월>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티븐 달드리의 영화 <디 아워스>가 안겨준 입체적인 경험은 비록 없겠지만,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소박하고 친절한 주석으로서 <댈러웨이 부인>은 원작을 아는 사람들이 한번쯤 기억해볼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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