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 산부인과>의 오지명이 <쌍둥이네>로 복귀 신고를 마치고, 코미디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연기자들이 속속 시트콤 왕국에 입성하면서 전에 없던 풍성한 시트콤 세상이 펼쳐졌다. 가을 개편에 살아남은 시트콤 수는 모두 8개. 시트콤 종주국인 SBS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골뱅이> <여고시절>을 비롯, KBS 2TV의 <쌍둥이네>와 <멋진 친구들2>, MBC <뉴 논스톱>, 경인방송의 <립스틱>이 메뉴판에 올랐다. 기존에 방송되던 <뉴 논스톱>과 <골뱅이>를 빼곤, 모두 지난 봄 개편 때 신설된 프로들. 이들 시트콤에 지난 여름은 너무나도 가혹한 계절이었다. 여름 햇살보다 더 뜨겁던 사극 열풍이 <웬만하면…>을 제외한 나머지 시트콤들을 고사(枯死) 직전까지 몰고갔기 때문이다. 출연진을 대폭 물갈이하고, 초반의 극중 설정을 아예 바꿔 분위기 쇄신에 나서는가 하면, 대량의 인기 게스트를 동원해 눈길을 끌어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나 결과는 여전히 암울하다.
가을의 문턱을 넘기까지 기구하다 못해 비참한 ‘연명 작전’이 동원된 속사정은 거개가 비슷하지만, 특히 MBC의 경우 짧은 시트콤 역사 중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서 있다. 99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남자셋 여자셋> 이후 연이은 후속 프로그램의 불발로 저녁 7시 드라마 타임대에서 내내 밀려난 MBC로서는 <뉴 논스톱>(권익준·김민식 연출)의 행보에 시트콤의 사활을 건 셈. MBC 시트콤의 역사는 가히 영욕의 역사라 불릴 만하다. <남자셋…> 이후 최불암, 홍진경, 채림 등을 등장시켜 최초의 가족 시트콤을 표방한 <점프>가 1회 방영 이후 계속되는 종영설에 시달려야 했고 고수, 양미라라는 젊은 피 수혈로 이목을 집중시킨 <점프2>마저 신인 탄생에 만족해야 했다.
<가문의 영광>은 어떤가. 제작진들 사이에 ‘가문의 수치’로 통하는 이 시트콤은 워낙에 뚜렷한 캐릭터가 없고 소재 또한 어정쩡해 그 인기 좋던 고수마저 캐릭터를 잃고 방황하다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신애라와 윤상 등 감초 역할을 해야 할 나이 지긋한(?) 조연들이 오히려 ‘어른 일색의 시트콤은 안 된다’는 확신만 심어준 꼴이 됐다. 조기종영이라는 극단적인 조치 이후 등장한 <논스톱> 역시 위험 수위에 오르긴 마찬가지. 이벤트 회사와 의상 디자이너 사무실이 한 공간 안에서 부딪힌다는 상황 자체가 설득력이 없는데다 캐릭터의 성격이 매회 바뀌는 통에 시청자들의 외면은 골만 깊어질 뿐이었다. <논스톱>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탄생한 시트콤이 바로 <뉴 논스톱>이다. 새로운 각오답게 전작의 기운을 말끔히 지우고 대신 대학생들의 풋풋한 캠퍼스 스토리를 집어넣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떨까. 현재 <뉴 논스톱>은 경인방송을 포함한 4개 방송사의 8개 시트콤 중 2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웬만하면…>을 제외한다면 놀랄 만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뉴 논스톱>을 만들고 있는 김민석 PD는 위와 같은 결과에 대해 ‘<남자셋…>을 따라한 게 적중한 것 같다’고 전한다. 기존 제작진들이 <남자셋…>의 성공을 부담스러워하며 ‘뭔가 달라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면 자신들은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의 전략으로 성공작의 장점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는 것. 출연진의 성별구도를 그대로 따온 것은 물론이고 캐릭터의 성격도 전작과 비슷하게 그려넣었다. 무엇보다 젊은 층이면 누구나 좋아할 캠퍼스 이야기로 전체적인 틀을 짜 최대한 안전한 길을 택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아니었다. 캐릭터 설정이 미약했던 초반은 ‘일단 튀고보자’는 생각에 GOD, 조성모 등 유명 게스트들을 무작위로 투입하여 시청률을 20%대까지 올렸지만 캐릭터는 부실한 채 게스트의 힘에만 의존한다는 비난도 많았다.
더군다나 봄이 되고 게스트들이 자신의 활동을 이유로 빠지자 시청률은 10%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양동근, 박경림 등이 확실한 자기 캐릭터를 갖추게 된 몇달 전까지도 고전은 계속됐다. 현재는 송승헌-이의정 커플을 벤치마킹한 박경림-조인성의 사랑 얘기로 안정대인 15%에 진입, 이제 다음주면 박-조 커플이 완전한 커플 신고식을 올리고 새로운 에피소드로 진입할 예정이다. 특정한 상황이 유발하는 웃음말고도 재미있는 가운데 현실감이 묻어나는 개성적인 캐릭터야말로 <뉴 논스톱>의 행진을 당분간 ‘논스톱’ 상태에 둘 최고의 미덕. 덜렁대고 푼수에다 능글맞기까지 한 인물은 어김없이 주위에서 흔하게 보는 친구들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번 겨울 시즌을 MBC 시트콤 최고의 계절로 만들어보겠다는 제작진의 투지가 얼마만큼 결실을 맺을지 역시 얼마나 더 ‘사람 냄새’ 풍기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