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TV 일일드라마 <열아홉 순정>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장면이 있으니, 부잣집 막내딸이 방 침대에서 이불을 덮어쓸 때다. 계절이 두번 바뀌도록 늘 같은 이불이다. 가사도우미까지 두고 살면서 한번도 안 빨았다는 말씀이다. 화장한 채 잠자고, 없이 살아도 반찬 가짓수며 담긴 모양새며 꼭 누가 차려준 듯한 밥상을 받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이나 위생과 관련된 소품에는 부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미국이라는 이불 아래서만 안심하시는 분들이 철지난 이불을 칭칭 둘러 덮고 몰려나와 구린 판국에 말이다.
나의 이런 언사도 철지난 것인지 모른다. 2년 전인 2004년 10월 어느 목사님이 국가보안법 사수를 외치며 “대한민국이 적화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손길은 미국을 통해 나타났다”고 찬양했을 때만 해도 어이없어했는데, 이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여쭤볼 필요도 못 느낀다. 성경의 “네 이웃을 돌보라”는 말씀에서 ‘이웃’은 위기에 처한 이웃을 뜻한다는데. 현직 총리 남편을 포함한(부부가 개별성을 갖는 게 아메리카 스타일 아냐? 거참) ‘좌파·반미 세력’이 득세해 이웃뿐 아니라 온 국민이 비상사태에 처했다는 외침에 무심한 걸 보니, 이래서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실 자격이 없나 보다.
이번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대열에는 새 얼굴도 있다. 전직 경찰총수들과 전직 외교관들이다. 전직 외교관들이야 영어를 잘한다쳐도, 전직 경찰총수들은 왜 그러지? 전시가 되면 경찰의 작전권이 군으로 넘어가는데, 그렇게 영어로 지휘받고 싶은가? 자기가 얼마나 쿨한지 보여주려고 핫하게 몸부림치는 할아버지들은 귀엽지만 자기가 얼마나 핫한지 핫하게 몸부림치는 할아버지들은 버겁다. 이런 ‘전직들’ 때문에, 밖에 나가 밉보이면 안 된다며 아침마다 ‘구리무’ 바르시는 지상에 계신 우리 아버지 같은 ‘전직 회사원’ 할아버지가 대접을 못 받는 거다. 전직 기자 조갑제의 “나눠 나가, 함께 타격한다”는 ‘분진합격’(分進合擊) 구호는 영어보다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