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를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모 제작자는 김성수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을 나란히 앉히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안 돼, 홍콩영화 죽어도 못 따라가.” 5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한국 액션영화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두 남자가 국내 최초 액션영화 전문 브랜드 ‘짠’으로 의기투합했다. 나비픽처스 사무실에서 마주친 그들은 ‘짠’과 영화계에서도 찬밥 취급 당해온 한국 액션영화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과 꿈을 털어놓았다.
김성수: 액션영화도 스스로 진화하고 형태를 바꿔가고 있다. 참신한 상상력의 젊은 감독은 아이디어나 스타일로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액션영화를 만들 수 있다. ‘짠’의 다섯 감독 중 유일하게 확정된 사람은 이 방에 있다.
정두홍: 저는 몰라요. (웃음)
김성수: 젊은 감독에게 10억원은 작은 돈이 아니다. 액션영화를 만들기에 작지만 그 돈으로 극장에서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액션영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10억원이 주어진 전부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노고나 일정한 착취가 이루어질 것이다. 봉사, 헌신, 착취를 비롯해 우리 이름으로 사람들을 엮어 만들 생각이다. 단 이 영화에서 십원이라도 수익이 생기면 그것은 모두 나눈다. 그래서 떳떳하게 착취할 생각이다. (웃음) 무술은 어떻게 진행하나?
정두홍: 요즘 서울액션스쿨은 투톱 시스템으로 무술감독 신인을 키운다. 그 방식을 ‘짠’에도 적용할 생각이다. 한번 나랑 같이 작업한 친구들은 영화를 맡길 수 있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은 투톱으로 진행한다.
김성수: ‘짠’은 나와 정두홍을 포함한 모든 참여자가 경험한 노하우를 내부에 축적하자는 취지다. 영화는 한편의 흥망성쇠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영화는 실패해도 많은 것을 남기고, 성공해도 배울 점이 하나없는 영화가 있다. 이것은 우리의 작은 시작이지만 장기적인 의미는 크다. 언젠가는 어느 나라에서든 ‘짠’ 로고가 붙은 영화나 DVD를 사람들이 재밌다고 신뢰하며 고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정두홍: 베니스에서 <짝패>를 본 노인 두분이 “다른 영화는 과장이 심한데 너희 액션은 빠르고 진짜로 때려서 너무 좋다”고 하더라. 한국 액션은 분명 존재하고 그들은 다른 아시아영화와 우리를 구별한다. 정작 우리만 그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김성수: 액션영화는 하위장르다. 액션영화를 학교에서도, 단편영화제, 한국 영화계, 전세계 영화계에서도 낮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과 내 기준은 다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하게 다가온 영화는 <정무문>이다. 스물일곱에 뒤늦게 영화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정무문>으로 썼다가 엄청 욕먹었다. (웃음)
정두홍: 스턴트맨들에게 경영 마인드를 갖게 하고 싶다. 우리 액션스쿨 스턴트맨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매일 죽어라고 발차기를 한다. 하루 천번에서 1500번씩. 촬영현장에 가면 그들이 몇번이나 발차기를 하고 죽을까. 한번도 못하고 죽는다. 그러니까 애들이 그 다음부터는 연습을 게을리한다. 스턴트맨이 되려면 1년 동안 죽도록 훈련받는데 영화에 참여하는 순간 속았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주인이 될 수 있는 동기나 목적이 필요하다. 서울액션스쿨은 앞으로 ‘짠’뿐만 아니라 저예산으로 이런 액션이 필요한 발전적인 영화라면 무조건 동참할 생각이다. <짝패>가 대표적이다. 냉정하게 돈 한푼 안 남았다. 하지만 “아깝다. 저놈 나쁘네. 말이 다르네”라고 말하는 친구들은 한명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영화를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짠’을 통해 성패가 있겠지만 전체적인 인식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제에서 심사를 해도 우리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못 따라간다. 아이들 사고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분방하다. 뭔가 틀에 박히지 않고서도 자기들만의 액션 세계를 보여준다. ‘짠’을 통해 그런 고삐 풀린 망아지들을 발탁해야 한다. 어떤 훌륭한 말이 될지 모르니까. 성수 형도 이태원에서 머리칼 휘날리며 살다가 지금은 이렇게 훌륭한 영화감독이 됐잖아. (웃음)
김성수: 류승완 감독이랑 헷갈리나보네. (웃음)
정두홍: 아니, 형 이야기 맞는데. (웃음)
김성수: 언젠가 장이모 감독이 “액션영화 찍기 너무 힘들다”고 말하기에 내가 화를 냈다. “감독님은 이연걸, 견자단 데리고 찍으니까 풀숏을 고속촬영으로 찍잖아요”라고 했다. 내가 “한국에서는 풀숏을 고속촬영으로 한번도 못 찍었다”고 하니 “그럼 뭘 찍느냐?”고 묻더라. (웃음) 그래서 나는 “컷을 많이 찍어서 대역을 쓰더라도 주연배우가 액션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건 잘한다”고 말했다. 한국 액션영화는 이제까지 그랬다. 그런 면에서 <짝패>는 일종의 신기원이다. 액션영화를 보는 건 그 액션배우의 라이브 액션을 보려고 돈을 내는 것이다. 한국에서 액션장면의 풀숏을 고속촬영으로 찍을 수 있는 배우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짠’은 아직은 덜 유명한 배우를 기용하겠지만, 액션의 풀숏을 고속촬영으로 찍을 수 있는 기량을 가진 배우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유명한 액션배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