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드 팔마의 <블랙 달리아>
베티 쇼트는 1947년 1월15일, 몸이 절반으로 토막나고 내장이 다 비워지고 입 양쪽이 귀까지 찢어진 채로 공원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을 함께 수사하게 된 파트너 겸 친구 리 블랜처드(아론 에크하트)와 버키 블레커트(조시 하트넷)는 수사가 진행될수록 서로의 관계에 금을 만든다. 그러다 블랜처드가 죽고, 버키는 할리우드 유세가문의 딸에게서 결정적인 정보를 얻으면서 사건의 진실에 다가선다.
영화 <블랙 달리아>는 스토리텔링에서 완전히 상반된 성향을 추구하는 두 작가의 충돌이 시너지를 내지 못한 결과에 가깝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히치콕 스타일의 편집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매우 시각적이고 날렵한 스토리텔링을 추구한다. 반면 제임스 엘로이는 양적으로 방대하고 논리적으로 치밀하며 꽉 짜인 세계를 추구하는 묵직한 소설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누아르 혹은 범죄물이라는 한 장르에 대해 경도돼 있다는 것 외에 없다. 물론 <블랙 달리아>에서도 드 팔마 고유의 사인은 있다. 분할화면이라든지, 심도를 과장한 화면이라든지, 클라이맥스의 스릴을 자아내는 미장센과 편집 기법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저 요소로 남을 뿐이다. 1940년대 LA의 뒷골목을 물들였던 폭력과 섹스, 부패와 탐욕, 배신 등의 테마를 이용해 드 팔마는 <블랙 달리아>를 얼마든지 자신의 영화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원작에 빽빽하게 적힌 엘로이의 LA를 공부해야 했던 듯하다. 개막작 기자회견 때, 기자들은 두 사람의 협업과 서로에 대한 간섭을 궁금해하는 질문을 많이 던졌지만 그때마다 감독과 원작자 모두 애매한 대답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돌려 막았다. “제임스에게 빚을 많이 졌다. 당신들이 화면에서 보는 1940년대 미국의 분위기는 엘로이가 창조한 것이다.”(브라이언 드 팔마) “브라이언은 훌륭한 감독이다. 그는 내가 책으로 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스크린 위에 옮겨놓았다. 나는 전혀 불만이 없다.”(제임스 엘로이)
범죄소설의 장인 제임스 엘로이 그리고 스릴러의 대가 브라이언 드 팔마. 매혹적인 한 핏줄 장르의 두 거장이 만난다고 해서 개막작에 쏟아지는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공식상영 이후로는 베니스에서 개막작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누아르영화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한 방법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원작자 제임스 엘로이·스칼렛 요한슨 기자회견
-‘블랙 달리아’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이전에 이미 있었다. 로버트 드 니로와 로버트 듀발이 주연한 <어솔루션>(1981)이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완벽한 누아르란 무엇인가. =제임스 엘로이: 누아르란 무엇인가? 거미줄처럼 얽힌 사건과 멋있는 범죄로 구성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잔인한 사건,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고 사람들은 재미와 호기심으로 범인이 밝혀질 때까지 이 사건을 눈여겨본다. 꼭 지금 TV연속극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누아르는 하나의 시선이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과거를 재해석하는 방법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새로운 히치콕 감독의 축소판이다. 그는 히치콕보다 훨씬 용기있고 복합적이다.
-연기할 때 섹스 심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연기하는가. 섹스 심벌로 보여지는 것과 연기와 무엇이 더 중요했나. =스칼렛 요한슨: 누가 대신 대답해줄 사람 없나요? (웃음) 역할이 요구하는 것을 할 뿐이다. 이번 역할(케이 레이크)이 때로는 섹시한 면이 있는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섹시하게 보였지만 중요한 것은 역할이 요구하는 연기다. 섹시한 장면이 있지만 그것은 내용상 그런 강렬한 분위기가 요구되는 것이라 했을 뿐이다. 내가 섹스 심벌인지 아닌지는 그리 염두에 두는 편이 아니다.
-당신의 소설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당신은 얼마나 관여했는가. =제임스 엘로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전혀.
-브라이언 드 팔마의 각색 포인트 중에서 당신과 의견 충돌을 보인 부분도 있었을 텐데. =제임스 엘로이: 그런 일은 없었다. 한 가지 반대한 부분이 있다면, 엘리자베스 쇼트가 좋은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영화사에서 포르노를 찍은 필름을 영화 속에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그 포르노 필름 속 엘리자베스 쇼트의 모습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그 장면이 꼭 들어가야 된다고 했고 그 장면을 먼저 찍어서 보여주었다. 보고 나서 브라이언을 믿게 됐다.
-완성된 영화를 보았을 텐데,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제임스 엘로이: 아주 좋아한다. 브라이언의 영화가 갖고 있는 누아르적인 상상력이 좋다. =브라이언 드 팔마: 누아르영화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