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영국 서머싯의 젊은 농부 마이클 이비스가 주말 내내 자신의 드넓은 농장을 개방하여 가수들의 공연을 추진하자, 1500여명의 히피들이 모여들어 주말 내내 음악과 축제의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7월 말이면 글래스톤베리는 전세계의 록 마니아들로 북적인다.
<글래스톤베리>는 롤링 스톤스, 데이비드 보위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섹스 피스톨스의 다큐멘터리 <The Filth and Fury>를 작업한 바 있는 줄리언 템플의 작품이다. 감독의 지휘 아래 12명의 촬영감독들은 2002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참가자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과 뮤지션들의 짜릿한 공연 실황을 담아내고 이제는 중년이 된 마이클 이비스를 통해 글래스톤베리의 역사를 듣는다. 뿐만 아니라, 지난 30여년간 참가자들에 의해 촬영된 축제 영상을 삽입하여 글랜스톤베리의 연대기를 구성해낸다.
과거 평화와 생명을 노래하던 히피들이 반대처리즘, 반전, 반핵을 외쳤듯 반제국주의, 반부시, 반정부의 구호는 여전하다. 축제 참가자 중 누군가는 그곳에서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고 말했지만, 글래스톤베리의 정신은 단순히 현실을 초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유와 해방이라는 슬로건이 단지 주말 동안 돈을 지불하고 얻은,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적인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굳이 이 세계적인(사실은, 서구인들의) 음악 페스티벌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무리 순수한 목적으로 시작된 축제도 규모가 커지고 자본이 개입되면 원래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듯, 글래스톤베리도 그 변화를 감내해야 했다. 무단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농장 주변에는 담장이 설치되었다. 가난한 진짜 히피들은 쫓겨나고 그 자리는 평범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여피들로 채워진다. 축제 현장 곳곳에는 우발적인 사고를 감시하는 CCTV가 설치되었고, 담장 주변에는 무단 침입자를 다스리는 경찰들이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이 세계적인 이벤트는 <BBC>에 의해 촬영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자신이 반대했던 가치와 공존하며, 여전히 그 반대를 외치는 일은 얼마나 정당한가?
마이클 이비스는 축제를 그만두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타협을 거부하는 길보다는 변화에 발맞추며 축제를 지속시키는 길을 택한다. 그게 30여년간 지속되어온 글래스톤베리에서 여전히 생의 반짝임을 만끽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 다큐멘터리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로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우리에게 유용한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풍요로운 텍스트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