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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가능한 비극적 사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문석 2006-09-12

예측가능한 비극적 사랑,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아가페를 이타주의적 사랑으로, 에로스를 이기주의적 사랑으로 단순하게 분류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속 사랑은 그 중간 정도에 자리한 그것이다. 공지영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소설의 자잘한 가지를 걷어낸 채 사형수 남자와 그를 매주 방문하는 여성의 ‘사랑’을 그린다. 머지않아 삶의 햇빛 너머로 떠날 사람과 그 빛을 당분간 감당해야 할 사람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에로스적일 수는 없겠지만, 이들의 짧은 교분 또는 소통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기에 아가페와도 다소 거리가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멜로영화지만, 성적 긴장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특정 신앙 안에서 합일되는 두 영혼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차라리 두 사람은 ‘영적 도플갱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초반부, 두 사람은 비슷한 구석이 없는 듯 보인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유학까지 다녀왔고, 친인척이 운영하는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유정(이나영)과 세명의 무고한 사람을 살인하고 그중 10대 소녀에게는 성폭행까지 자행한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은 윤수(강동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인가. 유정의 고모이자 윤수가 있는 교도소의 종교위원인 모니카 수녀(윤여정)가 두 사람을 만나게 할 때만 해도 둘은 서로를 먼 외계의 존재로 받아들인다. 하여 외계인끼리의 첫 만남은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끝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삶에 대한 의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정은 자동차 안에서 수면제를 통째로 씹어먹으며 세 번째 자살을 시도했고, 윤수는 자신의 사형을 조기에 집행하는 탄원을 해달라고 이야기한다. “이따시만한 해가 무섭”다면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유정이나 가장 두려운 게 뭐냐는 질문에 “아침이요”라고 답하는 윤수나 마음속에 밝은 빛을 둘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무서운 상처를 갖고 있다. 이미 둘의 비슷한 점을 알고 있던 모니카 수녀는 유정에게 말한다. “보니까 너도 알겠지? 너하고 윤수 그 아이 많이 닮은 거.” 두 주인공이 서로를 외면하고 소통의 문을 닫으려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상대 안에서 자신의 감추고 싶은 상처를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색하고 고통스러운 만남이 거듭되면서 윤수가 쌓아올린 증오의 벽과 유정이 막아버린 화해의 통로는 서서히 뚫리기 시작한다. 특히 윤수가 살해한 파출부의 노모가 교도소를 찾고, 두 사람이 자신의 어둠을 스스로에게서 풀어놓으면서. 결국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윤수와 유정이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그 과정은 결국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흉물스러운 상처를 포함해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다른 사람까지 용서할 수 있으며, 삶의 밝은 빛도 받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 영화는 진심으로 전하려 한다. 파리하지만 꿋꿋한 캐릭터인 유정 역의 이나영과 무뚝뚝하지만 여린 내면을 가진 윤수 역의 강동원의 연기나 <파이란>을 통해 일상적이지 않은 멜로드라마를 직격탄으로 쏘아날린 바 있는 송해성 감독의 연출은 이러한 ‘진정성’을 강화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문제는 이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를 너무 오롯하고 반듯하게 담아낸다는 점이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이야기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기대를 많이 거스르지 않는다. 그건 영화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역설이 될 수도 있는 제목을 직설로 받아들이려 하는 데서 비롯된 건 아닐까. 유정과 윤수가 전면적으로 소통하게 되는 과정은 마치 정해진 대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둘의 갈등이 해소되고 서로를 인정하기까지의 흐름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까지 충분히 와닿지는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중반 이후 시작되는 유정과 윤수의 ‘행복한 시간’을 돋보이게 드러낸다.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의 짧지만 행복한, 아니 너무 짧기 때문에 더더욱 행복한 이들의 순간은 아름답기 짝이 없다. 단지 “사람이 변하는 게 기적”인 것만으로도 충만한 순간이건만 영화는 두 사람에게 굳이 면죄부와 날개를 부여해 천사로 만든다. 천국은 교도소 안으로 강림한다. 윤수가 “웃으면 더 잘생겨 보이는” 남자가 아니었거나, 정말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인면수심의 범인이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를 마음을 깨끗하게 씻은 천사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 시비조의 근심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결점은 존재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소설의 구성 대신 평이한 전개를 선택함으로써 드러난 듯한 다소 밋밋한 흐름이나 사형제도에 대한 어정쩡한 지적, 후반부에 보이는 감상주의 등등. 그러나 이 영화는 동시에 이들 문제제기를 무력하게 하는 요소를 갖고 있다. 그건 무엇보다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한 뒤 “이젠 살고 싶다”고 말하는 한 인간에 관한 것이다. 그것을 아무리 저 세상으로의 여행 또는 하늘로의 귀환이라고 부른다 해도 인간이 인간에 대해 죽음의 형벌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보는 이의 두뺨 위로 흐르는 눈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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