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교복, 두발 자율화를 경험한 세대다. 거꾸로 말하면 중학교 2학년까지 머리 깎고 교복 입고 모자를 썼다는 말이다. 어려서 교복에 심한 거부감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막상 자율화가 이뤄지자 얼마간 당황했다. 교복을 입었을 때 감춰졌던 빈부격차가 한눈에 드러나 학교 가는 일이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자율화는 기쁜 일이었다. 복장이나 머리 때문에 선생님한테 싫은 소리 들을 일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교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자율은 빈부격차의 노출에도 불구하고 억누르고 금지하는 것보다는 나은 조치였다.
그러나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게 됐다고 자율의 세상이 온 건 아니었다. 자율학습시간이 자율이 아닌 것처럼 대학 진학도 정말 자율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대학을 가야겠다 생각한 건 아마도 그곳엔 진정한 자율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대학에서 얼마나 자율을 만끽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마신 술의 양으로 보면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날도 끝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러 점심 시간 무렵 여의도에 가게 됐다. 빌딩 지하에 있는 큰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같은 복장이었다. 수십명의 넥타이 부대가 밥을 먹는 모습이 교복을 입던 중학교 때 모습을 연상시켰다. 순간 현기증이 났다. 선생님의 매는 없지만 월급을 받자면 모두 똑같이 저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자율의 세상은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꼭 월급 때문만도 아니었다. 제주도에 놀러갔던 어느 날 여미지 식물원 앞에서 커플티를 입은 신혼 남녀 수십쌍과 마주쳤다. 여의도의 식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기증이 일어났다. 정말 자율적으로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 그들이 내겐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애정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마저도 공장에서 한꺼번에 찍어내는 것일까. 비슷한 욕망과 비슷한 생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율은 그렇게 사랑의 표식까지 대량생산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규제하고 혼내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비슷해지고 같아지려는 경향. 그런 경향이 깊어질수록 남에 대한 관용은 엷어질 것이다. 함께 손가락질하지 않으면 낙오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튀는 것을 못 참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난 달라,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더욱 더, 나는 그런 세상이 무섭다.
달라야 한다. 나는 ‘다름’이 우리가 추구할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얼핏 생각하면 쉽지만 다르다는 건 주류를 벗어날 위험을 감수해야 가능하다. 온갖 매체에서 같은 유행을 소개할 때, 다수가 같은 정치적 견해를 피력할 때, 대다수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틀고 있을 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만 해도 그럴진대 대중문화에서 다른 것을 보고 듣고 섭취하며 다른 상상을 한다는 건 더 힘들다(경우에 따라선 돈도 많이 든다). <씨네21>을 만들면서도 언제나 다른 잡지와 달라야 한다고 되뇌곤 한다. 다른 면을 보고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굳이 <씨네21>이 존재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매호 어느 지면에서나 다름을 느낄 수 있는 잡지가 돼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토이자 숙명이다.
지면 개편을 했다. 대표적으로 새 코너 두 가지가 생겼는데 ‘이성욱의 현장기행’과 이영진 기자가 쓰는 ‘한국영화 후면비사’가 그것이다. 이성욱 기자가 쓰는 현장기행 코너는 촬영현장만이 아니라 영화제작과 관련된 다양한 현장을 다니면서 오래 취재하고 지켜본 결과물로 만들어질 코너다. 한두번의 현장공개를 지켜보고 쓴 것과 다른, 생생하고 깊이있는 취재기를 한달에 한번 이상 연재할 계획이다. 이영진 기자의 한국영화 후면비사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한국 영화사다. 오직 개봉하는 한국영화에만 쏠려 잊혀져가는 한국 영화사가 2주에 한번씩 이영진 기자의 손끝에서 맛깔나게 요리되어 나올 것이다. 새 코너 외에 잡지 전체의 디자인이 확 달라진 점이 눈에 띌 것이다. 늘 달라지고 새로워지겠다는 <씨네21>의 다짐으로 봐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