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루이스 브뉘엘과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자주 들르던 톨레도의 카페에 앉아 있다. 그런데 때는 2002년이란다. 그리고 20대의 브뉘엘이 만들지도 않은 <비리디아나>를 곤충학자 웨이터가 봤다 하고, 영화평론가는 <폭풍의 언덕>과 <트리스타나> 등을 싸잡아 욕한다. 놀랄 건 없다. 노년의 브뉘엘이 상상하는 영화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유대교, 가톨릭,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자들의 묘한 공조 관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세 친구가 거대한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 우주의 신비를 품은 영물인 ‘솔로몬의 탁자’와 대면하게 되면서 영화는 절정을 맞는다. 그렇다면 브뉘엘이 언제 <레이더스>나 <나니아 연대기>가 연상되는 모험영화를 기획이라도 했단 말인가. <브뉘엘과 솔로몬 왕의 탁자>는 사실 브뉘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카를로스 사우라가 연출한 영화일 뿐이다. 브뉘엘이 자신을 ‘영화적 아들’로 대우했다고 믿으며 산 사우라는 <브뉘엘과…> 안에 <안달루시아의 개>부터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 이르는 수많은 브뉘엘 영화의 장면을 뒤섞으려 노력한다. 그 결과가 썩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사우라의 대표작 <까마귀 키우기>보다 <브뉘엘과…> 속에 등장하는 ‘닭발’이 훨씬 설득력있어 보인다. 드물긴 하지만 브뉘엘이 액션어드벤처영화를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다. 대니얼 데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은 브뉘엘의 첫 컬러영화이자 미국 자본이 개입된(그래서 영어 대사가 나오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한편인데, 한때 소실됐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진 작품이었다. 거장이 항상 걸작을 만들 수는 없으며, 그도 간혹 쉬어가고 싶은 법.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은 그런 작품이다. 고독과 투쟁하는 친종교적인 주인공은 그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이고 많은 부분 평범한 영화이긴 하지만, 브뉘엘이 생전에 “아버지와 꿈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흥분상태를 그리려 했고, 어느 정도 성적 소재(이는 편집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를 들여오고자 했다”고 말한 걸 보면 그의 인장이 완전히 사라진 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주연을 맡은 댄 오헐리는 이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브뉘엘과…> DVD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사양을 보여주는 가운데 몇몇 부록은 영화에 사용된 특수효과에 대부분 할애됐다. 반면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 DVD는 50주년 기념판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하다. 그간 질 낮은 프린트와 뛰어나지 않은 복원기술로 훌륭한 영화의 조악한 DVD를 선보였던 VCI의 악명은 이번에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