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루이스 부뉴엘 (Luis Bunuel)

1900-02-22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5

/

네티즌8

기본정보

    }
  • 원어명Luis Buñuel
  • 다른 이름루이 브뉘엘; 루이 브뉴엘; 루이스 브뉴엘; Louis Bunuel;루이스 브뉘엘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0-02-22
  • 사망1983-07-29
  • 성별

소개

대표작 <안달루시아의 개>, <황금시대>, <비리디아나>
비디오 출시작 <세브린느>

루이스 브뉘엘 감독은 무신론자, 마르크스주의자, 프로이트주의자, 초현실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물신숭배주의자, 풍자영화의 대가였으며 <안달루시아의 개>로 초현실주의 영화의 태동을 알린 뒤로 어떤 사조에도 정착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네오리얼리즘의 대가 비토리오 데 시카, 뭐 이런 식이 아니라 그냥 루이스 브뉘엘식 영화였다. 언제나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영화를 찍었지만 작품세계가 일관성이 있다. 브뉘엘은 평생 가톨릭 교회, 부르주아, 파시즘을 비꼬고 공격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나이 육십을 먹으면 은퇴하거나 상상력이 떨어지는 게 보통인데 그는 육십을 넘어서 위대한 걸작을 만들었다. 특이하고 종잡을 수 없는 감독이다.

스페인의 아라공에서 태어난 루이스 브뉘엘은 여섯살 때부터 열다섯살 때까지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다. 18세기 이래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엄격한 교육을 받은 브뉘엘은 이때 평생을 종교에 맞서 싸울 것을 다짐했다. 25년에 마드리드를 떠나 파리에 갔고 프리츠 랑 감독의 <운명>이란 영화를 보고 브뉘엘은 영화감독이 될 자기 운명을 직감했다. 브뉘엘은 유명한 프랑스 감독 장 엡스탱을 찾아가 조감독을 자청했다. 엡스탱 밑에서 영화제작 기법을 익힌 브뉘엘은 화가이자 친구인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어머니가 부쳐준 돈으로 대망의 데뷔작인 <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ou>(1928)를 찍었다.

<안달루시아의 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귀가 맞지 않는 영화였다. ‘옛날 옛적에’, ‘8년 후’, ‘새벽 3시’, ‘16년 전’ 등의 자막이 깔리면서 시제를 왔다갔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줄거리도 잘 연결되지 않는다. 눈이 약간 튀어나온 우락부락한 남자가 여인의 눈을 베어내는 것으로 시작한 뒤 다음 장면에선 눈이 베인 바로 그 여자가 멀쩡한 모습으로 등장해 거리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쓰러진 남자를 쫓아가 열정적으로 입을 맞춘다. 브뉘엘이 인간의 모든 경험을 영화에 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으니 줄거리가 잡히지 않는 게 당연했다. 인간의 무의식, 꿈, 광기를 브뉘엘은 천연덕스럽게 얘기로 풀어냈던 것이다. 브뉘엘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비합리적인 연상을 자유자재로 이용했다.

자기들의 성욕과 교회 때문에 고통을 겪는 한쌍의 남녀에 관한 이야기인 <황금시대 L’Age D’Or>(1930)는 파리 시내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두 남녀의 꿈속에 들어가 기록영화를 찍듯이 시작하는 영화인데 온화한 예수가 난교파티에 참석하는 장면 때문에 각국에서 상영금지를 당했다. 그러자 브뉘엘은 이브 알레그레 감독에게 카메라를 빌려 들고 스페인에 가서 스페인 서부 지방의 끔찍한 빈곤의 실상을 냉정하게 담으면서 인민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 건 다 교회와 정부 때문이라는 걸 요목조목 따지는 전투적인 기록영화 <빵 없는 대지 Las Hurdes>(1932)를 찍었다.

그때부터 47년까지 브뉘엘은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러더스 파리 지사에서 더빙일을 했고 스페인 내전 때는 반프랑코 연합군 편에 서서 뉴스영화를 찍었으며 프랑코의 파시즘 정권이 스페인에 들어선 후에는 할리우드에 가서 편집, 더빙일을 했다. 46년 멕시코로 이주한 브뉘엘은 64년까지 20여편의 영화를 찍었다. 브뉘엘은 저예산의 상업영화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만들어 한해에 영화 세편을 찍은 적도 있다. 브뉘엘의 세번째 멕시코영화 <버려진 아이들 Los Olvidados>(1950)은 브뉘엘을 잊고 있던 비평가들을 흥분시켰는데 군데군데 초현실주적인 취향을 드러내면서 멕시코 아이들의 빈한한 삶과 꿈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비리디아나 Viridiana>(1961)를 계기로 다시 유럽에서 영화를 찍기 시작한 브뉘엘의 후기작들은 늘 부르주아와 교회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작품성향 때문에 주목을 끌었다. 갓 수녀가 된 비르디니아가 모욕받고 상처받고 타락해가는 과정을 담은 <비리디아나>는 교회가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망치는가를 브뉘엘식으로 공격한 작품이었으며 거지들과 부랑아들이 벌이는 질펀한 잔치를 최후의 만찬식으로 묘사한 장면이 유명하다. 스페인 정부는 상영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비리디아나>는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그리고는 브뉘엘의 후기 전성기가 열린다.

<추방당한 천사 The Exterminating Angel>(1962), <시골하녀의 일기 Le Journal d’nne Femme de Chambre>(1964), <세브린느 Bell De Jour>(1967), <트리스타나 Tri-stana>(1970),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1972), <자유의 환영 Le Fantome de la liberte(1974), <욕망의 모호한 대상 Cet obscur objet du desir>(1977)에서 보여준 노대가 브뉘엘의 재능은 놀라웠다. <추방당한 천사>,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자유의 환영>이 자기네들의 관습에 갇혀 허우적대는 부르주아들을 조롱하는 영화였다면, <세브린느> <트리스티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은 부르주아의 성적 강박감을 탐구한 영화였다. 브뉘엘 영화의 내용과 형식은 기존 사회와 문화가 정한 어떤 범주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사회와 인간의 우스꽝스런 단면을 그렸다. 앞으로 영화역사가 또 100년이 흘러도 이만한 대가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