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드라마는 드라마였다. 전날 드라마를 본 기쁨이 다음날 친구들과의 수다로 이어지면 곧 끝이었다. 요즘은 드라마를 DVD로 다시 본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 게시판이며 동아리에서 같이 논다. 쾌락의 집단 리플레이 기능. 그리고 이런 변화는 <매거진t> 백은하 편집장이 책머리에 쓴 대로 하자면 “시대는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그 드라마는 시대를 이끈다”.
<매거진t>가 처음으로 펴내는 ‘t mook’ 시리즈로 황인뢰, 노희경, 인정옥, 신정구 4명의 작가 작품론과 인터뷰를 담았는데, 이들은 시청률로는 판단할 수 없는, ‘시대를 이끄는’ 감수성의 전위부대다. 이 책은 그들이 만든 드라마 보기 즐거움의 리플레이를 극단화하는 시도이자 그들의 꾸밈없는 목소리를 담아낸 채집상자다. 눈매 날카롭고 흉내도 잘 내고 우리가 미처 못 본 걸 쏙쏙 끄집어내 어제 본 드라마의 감동을 되새기다 못해 의미까지 부여해서 안겨주는 친구랄까. 김혜리, 백은하 등이 다시 돌려놓는 드라마의 맛은 급속 냉동을 해서 원래 맛이 흐물거리기는커녕 더 탱탱하다. 가령 김혜리가 <안녕, 프란체스카>(신정구)를 ‘동족’끼리 서로를 알아보게 하는 비장의 표식 같은 시트콤이라고 할 때, 이 구절을 읽는 ‘동족’은 편집하면서 스스로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린 노도철 PD처럼 가슴이 벅차오를 것이다. 또는 백은하가 <꽃보다 아름다워>(노희경)에서 엄마에 관해 스크랩해놓은 구절. 엄마는 여자이자 사람이자, 속물이자, ‘나는 나쁜 년’이라고 버스 창에 써가며 남이 주는 상처도 모자라 제 가슴에 또다시 상처를 내고야 마는 소심한 인간이라고 썼을 때, 산발적으로 흩어진 엄마의 이미지가 모여들며 목이 콱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기자들과 독자들이 던지는 수작을 즐거워하며 모두 벗어젖히고 답하는 작가들의 인터뷰도 꽤 즐길 만하다. 드라마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노희경은 “하루의 5분만 글쓰라고 하지만 365일의 5분도 하지 않는다. 입으로는 열심히 해, 죽도록 사랑해”라며 꾸짖고, 인정옥은 남의 작품에 관심없느냐는 질문에 “나보다 못 써야 하는데 어떤 건 못 쓰는 것 같아 기분 좋다”며 즐거워한다. 외모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신정구의 고백도 들을 수 있다. 아, 참. ‘모 작가가 엘리베이터에서 여배우 목조른 사건’은 꼭 빼먹지 말고 읽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