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지난호에 이어 두 번째 서신이 도착했다. <유레루>에 관한 질문과 답으로 채워졌던 첫 번째 서신에 이어 이번에는 <괴물>이 화제의 중심이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마치 자신의 영화처럼 내밀하고 조용한 어법으로 <괴물>의 이모저모를 물었고, 봉준호 감독은 거기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첫 번째 편지에서 서로 안부를 물었던 두 감독, 이번에는 편지를 뜯자마자 바로 질문과 답을 건넨다. 그러고나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아쉬웠는지 “영화에 대한 감상을 더 전하고 싶지만, 그것은 다음에 직접 만나서 말하고 싶다”고 첨언을 전했다. 그건 봉준호 감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경을 떠나 신뢰하는 두 영화감독이 서로의 영화에 대해 진심으로 묻고 답하는 건 근사한 일이다. 그걸 읽는 즐거움도 크게 다르진 않다. 두 감독이 다시 만나 못다한 이야기꽃을 피우기를 바라면서 <괴물>과 <유레루>, 봉준호와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두 번째 서신교환을 전한다.
(이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묻고 봉준호 감독이 답했다.)
-<괴물>은 늘 보아왔던 배우들도 전혀 딴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박해일씨가 <살인의 추억>에서 용의자 역할을 했던 그 청년과 같은 인물이라고 느껴질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봉 감독님은 같은 배우를 다른 작품에 계속 캐스팅하곤 하는데요 그렇게 할 때의 즐거움이나 장점 등을 가르쳐주세요. =같은 배우의 전혀 다른 면을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의 배우와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감은 전체 영화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게 됩니다. 연기의 폭과 깊이를 가진 배우라면 이런 식의 작업들이 모험적인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소시민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대한 권력의 횡포에 대해 저항하는 면모가 진하게 느껴졌고, 깊은 공감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압력을 가하는 자의 모습이 냉정하면서도 유머있게 그려졌던 점이 좋았습니다. 봉 감독님이 생각하는 “거대한 권력에 대한 의문”이란 것은 어떠한 것인가요? 그것은 앞으로의 작품에서도 이어질 부분인가요? =일단 처음에는 제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한국사회만의 독특한 부조리함,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 그런 것들로부터 제 영화의 슬픔, 분노, 유머 등등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괴물>을 완성한 현재에는 그 모든 모순과 부조리들이 비단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것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시스템이 <괴물>의 주인공 가족 같은 ‘약자’들을 외면하는 현상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이것이 저의 영화 인생을 관통하게 될 지속적인 화두는 아니지만 현재까지 저의 영화들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온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촬영이 훌륭했습니다. 오락영화로서의 역동성이 있으면서도 섬세한 부분은 철저하게 섬세한 것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김형구 촬영감독과는 2편 연속으로 같이 일하신 건가요? <살인의 추억>과 다른 세계관의 변화를 어떤 식으로 상의하셨는지요? 그리고, 김형구 촬영감독님은 어떠한 타입의 감독이신가요? =김형구 감독님은 아주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성격만큼이나 안정되고 섬세한 카메라워크를 구사하시죠. 특히 드라마를 관통하는 인물의 ‘감정’에 아주 깊숙이 다가가려 애쓰는 분입니다. 즉, 감독과 연기자를 무척 존중해주는 훌륭한 촬영감독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의 추억> 때와는 달리, <괴물>에서는 많은 분량의 컴퓨터그래픽 숏들을 찍어내야 했기 때문에 시각효과와 관련된 많은 준비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물과 드라마의 감정에 깊숙이 접근해들어간다는 점에서는 <살인의 추억>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배우들끼리의 연기가 절묘했습니다. 이번 주연배우들은 어느 단계에서 캐스팅이 결정되어 있었나요? 그리고 촬영 전에 배우와 어느 정도의 준비를 가지셨는지요? =소녀 역할의 고아성을 제외한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 4명의 주연배우들은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미리 작업을 같이 하기로 약속된 상태였습니다. 제가 잘 아는 배우들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면서 시나리오 속의 캐릭터들을 묘사해나갔습니다. 일종의 ‘맞춤형 시나리오’라고나 할까요? 저는 늘 배우들과 사전 리허설이나 작품에 대한 토론보다는, 일상 잡사에서부터 다른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자유로운 대화를 즐기는 편인데 이번 <괴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편안한 순간들에서 주고받은 작은 교감이나 재미난 순간들이 촬영현장에서 연기연출을 할 때 영감을 주곤 합니다.
-<살인의 추억>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비오는 장면이 여러 번 있네요. 그리고 그 상황묘사가 매력적이었어요. ‘비’라는 도구가 영화에 끼치는 효과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비는 어떤 식으로 만드시나요? 전부 인공적으로 비를 만드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비오는 것을 기다린다거나, 또 아니면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진행하게 된 장면도 있는 건가요? =물론 강우기를 이용, 인공적으로 비를 만듭니다. 그러나 야외 로케이션에서의 비가 오는 장면은 직사광선이 없는 흐린 날씨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날씨를 기다리느라 진행에 차질을 빚곤 하지요. <괴물>에서도 할아버지(변희봉)가 죽는 ‘동작대교 시퀀스’ 전체가 비신이었는데요. 가장 힘들고 고된 촬영으로 기억됩니다. 굵은 빗줄기의 비주얼, 쏟아지는 비의 사운드, 화면 밖까지 느껴지는 축축한 물기… 시각과 청각, 촉각 이 모두를 아우르는 영화적 공감각(共感覺)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비신입니다. 그것은 결국 인물과 공간 또는 드라마의 분위기 자체를 송두리째 뒤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괴물>의 존재가 상당히 환상적이고 새롭지만, 그 신체능력에서는 ‘생물’로서 가질 만한 한계와 약점을 리얼하게 그려내신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이 재미있었고, 끝까지 몰두하게 되는 비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형태는 봉 감독님 머리 속에서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었던 것인가요? 혹은 디자이너의 제안이었나요? 괴물이 완성될 때까지의 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혹은, 참고로 한 실제 생물은 있었던 건지? =괴물이 경사면에서 굴러떨어진다거나, 빗물에 미끄러진다거나 하는 어눌하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은 애초부터 제가 구상했던 것입니다. 괴물의 완벽하고 카리스마적인 느낌보다는 그런 허술한 느낌들이 영화의 독특한 사실성을 강화해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신 괴물의 구체적인 모습들 하나하나는 모두 장희철 크리처디자이너의 작품입니다. 특히 섬세하고 복잡한 괴물의 입모양은 장희철씨가 가장 혼신을 다한 부분입니다. 괴물 형태의 출발점은 오염된 강에서 발견되곤 하는 등이 굽은 기형물고기의 모습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한강 둔치 위를 마구 뛰어다닐 수 있는 튼튼한 다리, 교각 아래를 기계체조 선수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긴 꼬리 등등 영화적으로 요구되는 괴물의 기본적 동작에 맞게끔 괴물의 신체구조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작품 규모나 느낌이 다른 작품을 만들어나가시는데요, 그것은 봉 감독님이 의도한 전개인가요? 이제까지 제가 본 작품들은 작품마다 생각이 다르면서도 각각 사회생활이나 인간의 깊은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그리고 있어,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그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게 봉 감독님 작품의 훌륭함이라고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이런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찍으실 건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를 통해 타인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저는 실제 세계에서는 친구도 많지 않고, 타인에게 잘 접근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영화를 통해서, 그리고 집단 작업인 영화 작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과 교감과 소통을 하는 편입니다. 가장 ‘영화적’인 표현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거칠게나마 요약한 저의 영화적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