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총리는 민주화 운동 경력도 간단치 않지만, 정치판에서도 스타일 구기지 않으면서 쓱싹쓱싹 일을 잘해왔다. 총리가 될 때 재산이라곤 서민 아파트촌 전셋집이 전부인 걸로 드러나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영리하고 섹시한 ‘여자동료상’보다 지혜롭고 인자한 ‘어머니상’을 더 쳐주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주류 정서에도 경쟁력있는 조건과 품성과 외모를 고루 지녔다(어, 미안 금실 언니).
그런 한 총리가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 평택 강제진압을 사과했다. 행정부 총괄이란 본연의 일도 바쁠 텐데, 여당과 청와대의 집안 싸움 말리는 것도 버거울 텐데, 툭하면 속아파하는 대통령 위로하는 ‘감성노동’에, ‘우린 절대 오류가 없다’(고 여기)는 정권을 대신해 때마다 대국민 사과라는 ‘지덕체노동’까지 해야 하다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자리가 주는 ‘뽀대’는 어디 가고 정권의 ‘뒷설거지’로 하루해가 멀다. 참 이번에는 앞설거지였지. 사행성 게임 못 막은 책임으로 두번이나 고개 숙인 다음날 대통령은 방송회견에서 우아하게 “마음으로” 사과했다. 문제는 대국민 사과든 당청 조율이든 지금까지는 한 총리의 ‘개인기’로 무마해왔다는 거다. 그게 언제까지 약발이 먹힐지는 모르겠다. 해도 해도 끝없는 집안일을 눈 밝은 가족이 제대로 알아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집에서 ‘노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처럼 “인류와 생선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식의 개그는 보여주지 않지만, 혹은 그래서인지, 본인 말마따나 “국민은 짜증내고 지지도는 자꾸 떨어지고 저도 힘이 들어”버린 상황이다. “일을 너무 많이 벌인 거 같다”고 원인도 알아서 헤아린다(그냥 일이 아니라 ‘재미없는 일’이라니깐요!). 사행성 게임 대책에 대해서는 “비싼 수업료 낸다 생각하며 인내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식으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대통령 아래라면 정말 한 총리가 아니라 한 총리 할머니라도 총리 해먹기 어렵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