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루가만에서 대지진이 발생한다. 미국 학계는 40년 내에 일본이 완전히 침몰할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는다. 일본 정부는 환란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며 안정만을 외친다. 다도코로(도요카와 에쓰시) 박사는 이에 의문을 품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그리고 일본 침몰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맞기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아비규환은 현실로 나타난다. 지진, 해일, 화산폭발로 인해 열도는 지옥으로 변한다. 잠수정 대원인 오노데라(초난강)는 연인 아베(시바사키 고)에게 영국행을 권유하지만, 과거 대지진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베는 거절하고 구조활동에 나선다.
1973년 발표되어 400만부 이상 팔려나간 고마쓰 사쿄의 동명 소설과 그해 만들어진 동명 영화를 뼈대로 한 블록버스터. 650만명의 관객 동원, 400억원의 흥행수익을 기록한 1973년 영화에 비기진 못하겠지만, 7월15일 개봉해 첫주에만 제작비 200억원의 절반 가까이를 회수하는 등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무려 7천명의 죽음을 앗아간 1995년 고베 대지진을 비롯해 지난 80년 동안 300회에 가까운 강진 사태를 경험해온 일본인들로선 “가까운 미래, 어쩌면 내일일지도 모른다”라며 운을 떼는 영화 속 종말론을 무리한 상상이라고 여기진 않을 것이다.
히구치 신지 감독은 <평성가메라>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특촬영화 및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높여온 인물. 1973년판 영화를 수십번 극장에서 봤다는 이 오타쿠 출신 감독은 일본 침몰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한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아니다. 차라리 그냥 침몰을 맞는 게 낫다.” 전반부의 인물간 갈등을 더 파고들거나, 결국 희생을 택하는 오노데라의 심리를 설명하는 대신 영화는 오사카의 고성과 홋카이도의 설경과 도쿄의 고층 빌딩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상황의 실제감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스펙터클의 재연에 만족하는 재난영화이기에 감독의 뜻과는 무관하게,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일본의 보수적 정치현실과 맞물려 강한 자위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영화처럼 느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