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꼬맹이 영래(박지빈)에겐 엄마(신애가)가 유일한 피붙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엄마지만, 그런 엄마가 부끄럽기도 하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는 창피함은 둘째다. 밀수한 화장품을 몰래 파는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선창가 선술집 앞에서 외상값 때문에 곰보 춘자와 머리 드잡이를 하다 망신을 사기 일쑤다. 경찰들도 영래 엄마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엄마가 사고를 칠 때마다 영래는 아이들로부터 ‘아비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풀이 죽어 지내던 영래는 어느 날 아버지 강성욱(이재룡)이 서울에 살고 있음을 춘자로부터 듣게 된다. 엄마에게 캐묻지만 영래는 아무 답도 듣지 못한다.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영래는 아이스케키 장사를 시작하고, 또 밀수 심부름을 하러 서울 가는 인백(진구)에게 아버지의 주소를 알아달라고 부탁한다.
<아이스케키>는 “아빠 찾아 삼만리”를 외치는 소년의 간절함을 따르는 가족영화다. 영래는 텃세 부리며 주먹질하는 승일 패거리가 무섭지 않다. ‘꼬르륵’은 절대 못 참는 먹보 친구 송수처럼 음식을 탐내지도 않는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영래는 무섭지도, 배고프지도 않다.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종적도 알 수 없는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래는 풍족하다. 그런 영래 덕에 빨갱이 아버지를 탓하며 살아온 인백도, 원망할 그 누구도 없던 고아 송수도 아버지를 점점 그리워한다. 인백은 밀수 심부름을 하는 와중에도 영래의 아버지가 사는 집을 알아봐주고, 송수는 운동화를 사겠다며 그렇게 아껴 모았던 꼬깃꼬깃 지전들을 친구 영래의 여비를 위해 선뜻 내놓는다. <아이스케키>의 인물들은 하나같다. 기댈 수 있는 아버지 하나를 내 마음속에 품었으면 하는 마음만은.
퇴색한 기차역, 삼륜자동차 등 이미 수십년 전에 타임캡슐에 들어간 소품과 배경들의 전시도 눈에 어른거리지만, <아이스케키>에서 첫손에 꼽을 만한 볼거리는 전라도 사투리를 오물거리는 아이들이다. <안녕, 형아>에서 이미 ‘아역’ 배우라는 꼬리표를 떼낸 박지빈은 똘망똘망한 눈동자 하나로 보는 이의 눈자위를 적시게 한다. 아이스케키 박스를 돌려달라며 영래에게 사정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송수 역의 장준영도 박지빈 못지않은 꼬마 배우로서의 역량을 선보인다. 장편영화로는 다소 굴곡없는 이야기, 그러나 아이들은 정말 그 시대를 살았던 ‘아이’들처럼 천연덕스럽게 모든 것을 해내고 또 메운다. 기어코 송수의 다리를 앗아가는 장면이 신파를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는 눈살을 찌뿌리게 하지만, 영래가 한손엔 아버지의 손을, 또 한손엔 아이스케키를 들고 빠는 장면에서 포만감을 느끼지 않는 이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