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의 영화 <뮌헨>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뮌헨올림픽 선수촌에 들어가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스라엘이 발칵 뒤집힌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인 골다 메이어는 에릭 바나가 연기한 주인공을 집으로 초대해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요인들을 암살하는 비밀지령을 내린다. 무시무시한 암살명령이 이뤄지는 상황이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집안의 분위기는 너무도 평화롭고 아늑하다. 당시 정치상황을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자상한 할머니가 오랜만에 장성한 손자를 만나 반갑게 대화하는 장면처럼 보일 정도다. 정부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요인암살을 지시하는 장소라면 으리으리한 총리관저나 은밀한 제3의 장소가 적당할 것 같지만 <뮌헨>에선 평범하고 일상적 공간에서 음모가 진행된다. 오늘 저녁은 뭘 먹지,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투로 그놈들을 다 찾아서 죽여버려, 라고 말한다. 지금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도 그런 식으로 시작됐을 것 같다.
레바논 공습의 참혹한 결과를 담은 사진을 봤다. 아이들의 몸에 구멍이 뚫렸으며 사지가 떨어져나갔고 불에 탔다.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은 카나마을에선 민간인 56명이 죽었는데 이중 어린이만 34명이라고 한다. 레바논은 조건없는 정전을 제안했으나 이스라엘은 묵살했다. 공습은 재개됐고 레바논인 75만명이 난민이 됐다.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중동을 건설하겠다는 부시의 야망은 이라크에 이어 레바논도 피로 물들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것을 전쟁이라 부르지만 과연 전쟁이란 단어가 합당한 것일까.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는데 이런 게 테러가 아니라면 무엇이 테러일까. 레바논 공습을 전쟁이라 칭하는 건 일종의 말장난이다. 자기편에 유리한 테러는 전쟁이고 자기편에 해를 입히는 전쟁은 테러라고 부르는. 지구상에서 가장 흉악한 테러리스트는 부시, 라는 레바논 전 총리의 말은 그래서 정당하다.
과거 골다 메이어 총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6세가 이스라엘을 비판하자 “우리가 인정을 베풀어 조국을 잃고 약소민족으로 전락한다면 우리는 결국 가스실로 끌려가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 이스라엘의 입장도 비슷하다. 지금 멈추면 이스라엘과 싸우는 헤즈볼라에 기회를 줄 테니 반격을 당하기 전에 헤즈볼라를 궤멸시켜야겠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위협을 과장하는 방식은 이라크의 화학무기를 없애야 한다던 부시의 수사법과 다르지 않다.
<뮌헨>의 결론은 증오가 증오를 낳고 테러는 테러를 낳는다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배경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넣은 것은 스필버그의 의도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70년대 벌어진 사건이지만 그냥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급성을 작금의 사태는 무고한 이들의 피로 증명하고 있다. 스필버그의 <뮌헨>은 걸작은 아니지만 당장 시급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9·11 사태 이후 5년이 흘렀다. 그 5년 동안 세상은 어떻게 변했나? 과연 그토록 테러범 색출에 열을 올렸는데 실제로 테러가 조금이라도 줄긴 줄었나? 찜통더위가 시작된 8월 첫주, 폭격의 희생자를 담은 사진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레바논에 빨리 평화가 오길 기원하는 작은 목소리라도 나눴으면 좋겠다. 지난 8월3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이 레바논 침략을 규탄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는 소식은 그런 점에서 반갑다. 나도 레바논 난민을 위한 성금이라도 내야겠다. 세상이 더 나빠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