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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영화를 구하다, <플라이 대디>
김나형 2006-08-01

<플라이 대디>는 한 가장의 성장드라마다. 39살의 평범한 샐러리맨 장가필(이문식)은 ‘딸이 웬 남학생에게 맞고 오는’ 사소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가족의 방패가 되지 못한다. 상대는 거물 부모를 둔 10대 복싱 챔피언. 백 없고 배 나온 중년 아저씨가 취할 수 있는 액션은 없다. 가필은 원수를 두들겨패주기 위해, ‘한 싸움’ 한다는 고등학생 승석(이준기)을 만나 지옥의 트레이닝을 받는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 원작. 이준기와 이문식이 투톱으로 나섰다. 관객을 불러들이는 것은 이준기겠지만 그가 하는 역할은 거기까지다. 선이 고운 얼굴에 진중한 카리스마가 언뜻 비치는 듯하다가도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폼을 잴 때면 치기가 엿보인다. 진짜 주인공은 이문식이다. 딱 보기에도 상당히 불은 그가(15kg을 찌웠다) 우중충한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거리에 ‘놓여’ 있는 모습은 평범한 삶을 사느라 스트레스 더깨가 앉은 회사원 자체다.

안타까운 것은, 이문식의 호연에도 영화가 원작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설의 박순신(영화의 승석)은 재일 한국인이다. 태생적 이방인으로서 천대와 폭력의 세계에서 살아왔으나 곧고 다부진 강자. “내가 살아온 세계는 아저씨가 사는 세계와 달라”라는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반면 스즈키 하지메(영화의 가필)는 천성이 소시민이다. 상대가 딸을 모욕하며 위로금을 던지는 순간에도 내일 출근할 일을 걱정하고, 한달 넘게 준비한 복수의 장에서도 ‘이 정도면 됐어. 여기서 포기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야’라고 되뇐다. 그의 나약함은 못났고 현실적이기에 공감을 부른다.

영화의 승석은 순신의 배경을 갖지 못한 채 그의 액션, 그의 과묵함, 그가 좋아하는 책 모두를 겉멋으로 만든다. 가필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낼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 이러니 캐릭터의 힘으로 지탱돼야 했을 영화 중반이 공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영화가 저지른 만행에도 소설은 영화를 구원한다. 군더더기 없는 구성, 점층적인 훈련을 통해 나아지는 주인공을 보는 재미,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통쾌한 복수가 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약자를 응원하는 편에 서게 된다. 대부분 판돈을 날리고도 본전은 남긴 <플라이 대디>는 가네시로 가즈키에게 그만큼 큰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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