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은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공간의 돌연변이다. 주거와 사무가 공존하기에 오피스텔에서는 근무와 휴식의 시간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네번째 층- 어느날 갑자기 두번째 이야기>는 오피스텔의 혼재된 시공간을 통해 자본주의가 잉태한 비극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아이를 기르는 일과 직장생활 사이에서 매일 갈등하는 싱글맘 민영의 일상은 철거를 막고 아이를 지키려 몸부림치는 또 다른 어머니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고 우뚝 솟은 오피스텔에 입주한 민영에게 과거의 초라한 공간이 악몽과 환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교감으로 느껴진다.
민영(김서형)은 직장과 가까운 오피스텔 504호에 딸 주희(김유정)와 함께 이사한다. 설계사무소에 일하는 민영이 출근하면 여섯살 된 딸 주희는 언제나 홀로 남겨진다. 주희는 현관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을 목격하고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민영은 밤마다 악몽을 꾸고, 벽을 긁는 소리가 신경을 긁는다. 입주자가 절반도 되지 않는 오피스텔에서 실족사와 엘리베이터 오작동 사고로 주민들이 차례로 죽어나간다. 건물 관계자들은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아래층에 사는 창수는 시끄러울 일이 없는 민영의 집에 한밤중에 찾아와 조용히 하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주희는 피부병에 시달리고 반항적으로 변해간다.
제작비 5억원, 20회차의 촬영으로 만들어진 공포영화 연작 <네번째 층…>은 저예산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이야기 구조와 화면전개를 보여준다. <네번째 층…>의 안정된 플롯은 이사할 때 택일하는 미신, 새집증후군과 아토피성 피부질환, 아파트의 소음처리와 유치원 문제, 재개발을 위한 철거문제 등 관객이 흔히 접하는 일상사로 이루어졌다. 비슷한 주제의 단편영화 <숨바꼭질>로 주목받은 권일순 감독은 기복없는 연출력으로 이러한 세부를 효과적으로 배치했다. 엘리베이터의 숫자 표시로 시작과 결말을 보여주고 TV 화면의 암전을 이용하는 대목은 신인감독의 재치를 엿보게 한다. 다만 무서운 장면에서 전형적인 사운드를 반복하는 요소나 종반 부실한 컴퓨터그래픽은 보완되어야 했다. 공포영화의 문법을 착실히 따르지만 창작자의 개성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네번째 층…>은 데뷔작의 도전적인 면에서는 다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