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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를 뒤흔든 걸작, 그 작용과 반작용
2001-09-05

제3강 - 홍성남의 비평적 사건으로서의 <시민 케인>

<시민 케인>은 영화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초창기에는 호평 받기에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내러티브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하다, 테크닉이 자체로만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지적인 내용이 지극히 피상적이다라는 세 가지 비판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비판에 대한 비평적 반응이 쌓이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시민 케인>은 걸작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복잡한 내러티브 구조에 대해서는, 복잡하지만 흠잡을 수 없는 스토리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케인을 조명한 <시민 케인>의 내러티브 방식을 케인이라는 인물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받아친 것이죠. 둘째, 고전적인 영화에서는 대개 테크닉보다 스토리가 우위였습니다. 스토리가 아니라 테크닉에 관심을 둘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시민 케인>이 고전적인 영화와 구분된다는 인식론적 단절을 인정하게 했습니다. 셋째, 지적 내용이 피상적이라는 비판은 주로 영화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인민주의자던 청년 오슨 웰스는 정치적인 지향이 강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루스벨트의 지지자이기도 했죠. <시민 케인>에서 케인은 당대의 신문재벌이자 정치적으로 우익 경향이 강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주요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허스트를 닮은 사람을 웰스가 영화로 만들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정치적 영화를 예상했죠. 그러나 <시민 케인>은 표면상으로는 정치적 영화라는 느낌이 덜 듭니다(물론 당시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던 허스트 같은 거물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코멘트를 던졌다는 점만으로도 <시민 케인>은 꽤 위험한 영화, 잠재적인 정치 영화로 볼 수도 있긴 합니다). 덕분에 지적 내용이 피상적이라고 비판받았던 것이죠. 그러나 <시민 케인>은 허스트에 대한 위장된 공격이 아니라 케인이라는 캐릭터를 심층적으로 탐구함으로써 한 ‘미국인’의 캐릭터를 다룬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즉, 피상적이 아니라 더욱 심층적인 캐릭터 탐구인 것이죠.

<시민 케인>은 과연 누구에 대한 영화인가, 라는 질문에는 몇 가지 답이 가능합니다. 케인이라는 인물의 생애가 허스트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로라 멀비 같은 비평가는 <시민 케인>이 케인(=허스트)을 통해 미국의 고립주의가 처하게 될 운명을 암시한다고 보았습니다. 전쟁으로 유럽 유산이 파괴되는 시대에 미국이 취한 정치적 입장, 즉 다른 나라 일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고립주의 말입니다. 한편 케인이라는 캐릭터는 웰스 자신의 투영이기도 합니다. 웰스의 이후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웰스적 영웅에 대한 탐구가 <시민 케인>에서도 엿보이는 것입니다.

<시민 케인>의 혁신적인 스타일 가운데는 딥포커스가 가장 빈번하게 이야기됩니다. 딥포커스는 전, 중, 후경 모두 초점을 맞춰 찍는 것인데, 대표적인 장면이 톰슨 기자가 수잔을 처음 찾아갔다가 수잔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돌아나오는 장면이죠. 전경에는 톰슨이 신문사에 전화를 거는 모습이, 후경에는 수잔이 엎드려 흐느껴우는 모습이, 그 사이 중경에는 두 사람을 연결하면서 둘 다를 이용하는 듯한 웨이터가 자리합니다. 그 효과는 대단히 압도적이어서 그 위압적인 힘이 스크린 밖으로까지 연장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딥포커스를 높이 평가한 사람은 앙드레 바쟁이었습니다. 컷을 일일이 나누지 않고도 세계의 존재론적 리얼리티가 다 담기고 리얼리티의 모호함이 드러난다고 보았던 것이죠. 이는 관객이 영화보는 방식에도 단절을 가져와, 딥포커스와 함께 관객은 전체 상을 보면서 스스로 상을 조합,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딥포커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평가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시민 케인>이 단순히 리얼리즘영화로 환원될 위험이 생기는 거죠. <시민 케인>은 바쟁식의 리얼리즘 영화라기보다 편집이나 사운드 등 테크닉 자체가 눈길을 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내러티브 구조 역시 모더니즘적입니다. <라쇼몽>과 유사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좀 다릅니다. <라쇼몽>은 한 사건을 두고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여 진리의 모호성을 드러냅니다. 반면 <시민 케인>은 여러 사람들의 얘기로 이루어지만 그것들이 모여 인물의 복합성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이야기 구조가 통합적으로 짜여 있는 것이죠.

<시민 케인>이 이룬 혁신들 중 웰스가 최초로 만들어낸 것은 없습니다. 딥 포커스도 이미 장 르누아르나 그레그 톨랜드가 시도했었는데 <시민 케인>에 이르러 이를 제대로 구현할 물적 조건이 마련되었고 웰스가 그것을 빼어나게 활용한 것이죠. 중요한 것은 웰스가 기존의 혁신적 기법들을 한데 모아 통일된 효과를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또다른 면에서도 <시민 케인>은 상당한 영화사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바로 필름누아르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죠. 범죄라는 극적 요소가 빠져 있을 뿐, 탐구의 구조라든가 플래시백의 활용, 표현주의적 비주얼 전략 등에서 <시민 케인>은 확실히 필름누아르적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더라도 <시민 케인>은 확실히 다가올 트렌드를 먼저 보여줬던 ‘상징적인’ 영화였습니다.

위정훈, 최수임 기자

▶ 모두가 아는 영화, 그러나 알지 못했던 이야기 - 제1강

▶ 회화성과 음악으로 빚어낸 영상리듬 - 제2강

▶ 영화사를 뒤흔든 걸작, 그 작용과 반작용 - 제3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