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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내 어린 시절의 삽화, <정무문>
2001-09-05

어렸을 적 집 근처에 낡은 동시상영관 하나가 있었고 그 극장 주변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까닭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늘 그곳으로 가 친구들과 어울렸다. 해질 때까지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했고 어떤 날은 우리끼리 돈을 모아 극장 안으로 숨어들곤 했다.

극장 입구에서 표를 받던 아저씨 덕분이었다. 그는 손님들이 뜸한 날이면(아마도 장사가 잘 안 되는 영화가 걸려 있었을 듯한) 극장표 대신 코흘리개들이 모아온 돈을 받고 우리를 슬쩍 극장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어린 나는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극장 안으로 들어가 온종일 영화를 보곤 했다. 내 인생에서 영화보기는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그 나이에 보아서는 안 될 야한 영화에서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구석도 이해 안 되는 어려운 영화까지 무분별하고 무차별하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양으로 보면 행운스러운 시작이었고 질로 보자면 지극히 엇나간 시작이었으리라. 아무튼 그런 시작 탓이었는지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무차별 영화보기는 계속되었고 보는 것만으론 만족을 못했던지 급기야 영화를 공부하게 되는가 싶더니 종국엔 이렇게 영화감독까지 되고야 말았다. 그저 보기만을 좋아했던 열혈관객이었던 내가 이젠 관객에게 영화를 만들어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 선 것이다. 곤혹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더이상 영화를 순수하게 즐길 수만은 없는 인생이 돼버렸으니. 솔직히 가끔은 지난 시절이 무척 그립다. 그저 영화가 좋아 잘된 영화, 안 된 영화 안 가리고 그저 보고 즐기던 그 시절이….

아무튼 각설하고 그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 중 하나가 그 유명한(특히 386세대에겐) 이소룡의 <정무문>이다. 이 영화는 초등학교 6학년 땐가 중학교 때 우연히 어느 변두리 동시상영관에서 다른 영화와 함께 보았는데 그때의 충격과 짜릿함이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겨누고 있는 일본군의 총구를 향해 성난 야수처럼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이소룡의 모습에 스톱모션이 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객석 가득 울려퍼지던 탄성들(특히 남자 관객의)과 흡족함(영화적으로) 반 부러움(같은 남자 입장에서) 반의 얼굴로 극장을 나서던 많은 남자 관객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정무문>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일본군 점령기의 중국, 그리고 그들의 압제에 스러져가고 있는 무술도장, 정무문. 어느날 젊은 이소룡이 정무문으로 돌아오고 평지풍파가 인다. 그는 결국 출중한 무술로 일본 고수들을 하나하나 잠재우고 그 역시 비극적인 종말을 맞지만 마침내 정무문(중국인의 정신을 상징하는)을 일으켜세운다. 권선징악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여타 무술영화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상투적인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도록 했던 것일까?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소룡이었다. 미소년 같은 고운 얼굴과 천진난만한 특유의 미소, 군살 하나없는 아름다운 근육(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텔론 같은 배우들의 둔탁한 근육과는 질적·시각적으로 완벽히 다른), 동서양의 스타일을 섞어놓은 듯한 묘한 제스처, 그리고 비할 데 없이 빠르고 다이내믹한 무술 솜씨….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이소룡이란 배우를 하나의 매력덩어리로 만들기에 충분했고 사람들은 어느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그의 카리스마에 열광했던 것이다.

<정무문>의 저 유명한 장면, 일본의 최고수와 맞서는 마지막 장면을 보라. 무술에서 밀리는 일본 고수는 마침내 체면불사, 번뜩이는 대검을 빼어들고 휘둘러대기에 이른다. 그 순간 이소룡의 뒤춤에서 도깨비 방망이처럼 뽑아져 나오는 신기한 무기 하나, 쌍절곤. 허리에서 어깨 너머로 겨드랑이로, 허리 주위로 바람을 가르며 번개같이 움직여대는 그 현란한 쌍절곤의 움직임…. 그리고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상대. 순간, 사뿐히 쌍절곤 한쪽을 겨드랑이에 끼워넣곤 상대를 쏘아보는 이소룡. 잠시 감도는 적막…. 관객도 꼴깍 마른 침을 삼키는 순간이다. 이어 싸움은 다시 이어지고, 이번엔 상대를 향해 춤을 추듯 두팔로 허공에 원을 그려대는 이소룡. 그 부드럽고 살기 넘치는 두팔의 움직임은 특수기법(당시로서는)을 통해 여러 개의 팔로 스크린에 번져간다. 동시에 어두운 객석으로 번져가는 관객의 탄성…. 마침내 상대가 이소룡의 단 한번의 폭발적인 발차기에 벽을 뚫고 떨어지며 혼절한다. 다시 한번 객석에 번지는 후련한 탄성…. 이쯤 되면 관객과 배우가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 아닌가? 이소룡의 마력이 스크린 밖으로 흘러나와 관객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소룡의 매력은 나름대로 일세를 풍미했던 또다른 무술스타들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왕우의 어눌한 무술(연기력은 더 나을지 모르겠으나)이나 성룡의 왠지 경망스러워보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아무튼 <정무문>을 시작으로 <당산대형> <맹룡과강> <용쟁호투>로 이어지던 이소룡의 신화는 미완의 <사망유희>에서 끝났고 그가 죽은 지 30년이 가까워오지만 무차별로 영화를 보러다니기 시작할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면 늘 그 선두에 <정무문>이란 영화와 겹쳐져 이소룡이 생각나곤 한다. 영화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미학적으로 출중한 영화들을 접하게 되었고 어려운 영화에도 눈뜨게 되었지만 그냥 ‘영화’라는 걸 생각할 때면 철들어 보았던 타르코프스키나 잉마르 베리만 같은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 보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이소룡의 무술영화나 알랭 들롱의 누아르영화가 훨씬 더 생각나고 그러워지기는 건 왜일까? 아마도 그런 영화들과 더불어 함께 떠올라오는 내 삶의 추억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고 영화보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무료하거나 우울할 때 무던히도 찾았던 극장들과 어두운 객석 한쪽에 앉아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무수한 환상들을 보며 잠시 모든 것들을 잊던 시절의 추억들…. 이소룡에 푹 빠져 그처럼 머리를 기르고 매일 집마당, 거울 앞에서 근육을 다듬던 대학생 사촌형, 늘 지갑엔 이소룡 사진, 가방엔 쌍절곤을 넣고 다니던 고등학교 친구녀석, 청소 시간, 쉬는 시간이면 이소룡의 숭배자들에 의해 온 중학교 교실에 메아리치던 이소룡의 고양이 기합소리…. 지금도 <정무문>이란 영화를 생각하고 이소룡이란 배우를 생각할 때면 늘 내 눈앞에 펼쳐지는 아련하고도 친숙한 그 시절의 그림들이다.

나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봐왔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영화들과 추억의 동시대성을 나누어 지닐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가망성 없게만 느껴진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은 잔뜩 복잡해지고 이미 영화를 영화로서 편하고 순수하게 볼 수 없을 만큼 찌들고 교활해져버린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자꾸 예전이 그리워진다. 아무 생각없이 영화만을 보던 그 시절이. 이소룡의 날렵한 발차기가 내 발차기인 양 극장 의자에 앉아 있는 내 발이 덩달아 움찔하고, 극장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서 한번쯤 그의 표정과 기합소리를 흉내내보곤 하던 순진하던 시절이….

그것은 내가 <택시 드라이버> 속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를 인상깊게 보고(대학교 때 본 걸로 기억한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서 재미삼아 “Are you talking to me?” 하고 흉내내보는 것하곤 이미 너무 다른 궤도에 있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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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종찬/영화감독.<소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