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제작되었던 공포영화를 망라하는 ‘B급 호러영화 파티’가 7월20일부터 8월10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린다. 모두 14편이 상영되는 이 영화제는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와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같은 초기 호러영화를 비롯해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거장 마리오 바바의 <사탄의 가면>, 에드거 앨런 포의 원작을 각색한 로저 코먼의 <어셔가의 몰락>, 거대괴수영화의 아버지 격이라고 할 수 있을 더글러스 고든의 <개미>,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인 <공포의 휴가길> 등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B급 호러영화 파티’는 어떤 경향이나 몇몇 감독에게 집중하지는 않지만, 파티라는 단어 그대로 다양한 성찬을 즐기며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즐거운 자리가 될 듯하다.
자크 투르뇌르의 후기작인 <공포의 코미디>와 로만 폴란스키의 <박쥐성의 무도회>는 호러와 코미디를 결합한 독특한 영화들이다. 빈센트 프라이스와 보리스 카를로프가 함께 출연한 <공포의 코미디>는 악덕 장의사가 죽지도 않은 남자의 장례식을 강제로 치르려 하는 이야기로 슬랩스틱코미디이면서도 투르뇌르의 장점이 살아 있는 공포영화고, <박쥐성의 무도회>는 뱀파이어 사냥이라는 전통적인 소재를 코믹하게 풀어낸 영화다. 컬러로 제작된 최초의 드라큘라영화인 <드라큘라 1958>은 그 초상 자체가 드라큘라와 동일시되는 배우 크리스토퍼 리의 열연이 돋보인다. 마이클 포웰의 걸작 <피핑 톰>도 상영작에 포함되어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관음증과 살인의 기벽을 지니게 된 카메라맨이 주인공인 <피핑 톰>은 엿보는 자의 시선으로 진행되어 추악한 내면을 엿보는 섬뜩한 경험을 선사한다. 켄 러셀의 <런던의 악마들> 또한 외부의 괴물이 아닌,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공포를 성찰한다. 성적 매력을 지닌 신부에게 망상을 품은 수녀원장은 그를 악마로 고발하고, 권력다툼에서 비롯되었던 음모는 차츰 수녀원을 휩쓰는 광기로 번져간다. 집단 고문과 강간, 울부짖는 수녀들의 모습이 강렬한 영화. 이 밖에도 얀 드봉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로버트 와이즈의 <더 혼팅>, 흑인만 공격하도록 훈련받은 개를 통해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새뮤얼 풀러의 <마견>, 셰익스피어의 희곡 <폭풍>을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등장하는 SF로 각색한 <금지된 세계> 등을 만날 수 있다. 자세한 상영시간표는 142쪽 게시판 참조.
주요 상영작 소개
공포의 휴가길 The Hills Have Eyes 웨스 크레이븐 | 1977년 | 89분 | 컬러 | 미국
은퇴한 경찰인 카터와 그의 가족은 캠핑카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가던 도중 추락하는 비행기와 만나는 사고를 당해 자동차가 고장나고 만다. 사막에 고립되어 밤을 맞은 카터 가족은 포악하고 기이한 남자들에게 습격을 당해 하나씩 살해당하고, 카터의 갓난 외손자까지 그들에게 붙잡혀간다. 여과없이 묘사된 폭력과 살인이 충격적인 영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카터 가족을 지켜보는 밤의 언덕들도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런던의 악마들 The Devils 켄 러셀 | 1971년 | 111분 | 컬러 | 영국
루이 13세 시대의 프랑스, 리슐리외 추기경은 자기의 통제권 밖에 있는 도시를 장악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리슐리외는 권력가이자 호색한인 그랑디에 신부를 고발하기로 하고, 그랑디에 신부에게 성적으로 집착하는 수녀원장을 그 음모에 끌어들인다. 악마로 고발당한 그랑디에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수녀원은 점차 폭력과 광기로 물들어간다. 올더스 헉슬리가 소설로 썼던 이 사건은 17세기에 일어났던 실화다. 정치적 음모와 탐욕, 지옥으로 변해버린 현실이 신성모독으로 비난받았던 집단 누드와 고문 장면을 통해 악몽처럼 다가오는 영화. 데릭 저먼이 세트디자인을 맡았다.
프릭스 Freaks 토드 브라우닝 | 1932년 | 64분 | 흑백 | 미국
서커스단의 난쟁이 한스는 아름다운 공중곡예사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연인인 거인 헤라클레스는 한스가 모아둔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그와 위장결혼을 한 다음 그를 독살하고자 한다. <프릭스>는 샴쌍둥이와 팔다리가 없는 남자, 난쟁이 등의 실제 기형인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기보다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초현실적인 서커스처럼 펼쳐지는 기형인간들의 복수극 또한 무섭다기보다는 슬프고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