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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라는 공포에 대한 새로운 감각, <사이렌>

세이렌은 노래로 뱃사람을 홀리는, 몸의 절반은 새이고 나머지 반은 여자 형상인 신화 속 요정이다. 아르고 원정대를 이끄는 이아손 왕자는 세이렌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카프리 섬을 지날 때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오르페우스에게 리라를 연주하게 했다. 일정한 음역을 유지하는 경보신호음 ‘사이렌’이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다. PS2 전용 호러어드벤처 게임을 원작으로 한 J호러 <사이렌>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소리’가 공포의 요체이다.

유키(이치가와 유이)와 그녀의 아버지는 병약한 히데오의 요양을 위해 외딴섬 야미지마로 간다. 일본이 아닌 듯한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섬에는 알 수 없는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유키 가족이 거주할 먼지 쌓인 집에는 흉측한 다족류 벌레가 튀어나오고 묘한 분위기의 이웃집 여자는 사이렌이 울리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어느 날 밤, 촬영차 숲에 들어간 아버지는 미처 사이렌 소리를 피하지 못하고 그 뒤로 이상하게 변해간다. 외딴집에서 사이렌에 관한 메모와 29년 전 날짜가 적힌 수첩을 발견한 유키는 히데오를 돌봐주는 보건의 미나미다 선생(다나카 나오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섬에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이렌>은 그로테스크한 섬 풍광을 배경으로 궁금증을 증폭시키면서 점층적으로 서스펜스를 조장하는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최근 많이 보아온 익숙한 반전과 고전적인 막판 서프라이즈신은 장르가 자기복제에 빠질 때 나타나는 위험을 보여준다. 게다가 복선으로 깔리던 섬의 역사에 얽힌 내용이 흐지부지 실종되면서 내러티브는 균형을 잃는다. 경험적 지식과 합리적 이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러물은 현실세계의 질서를 뒤집는 무의식적 소망이 뒷받침될 때 힘이 생긴다. 하지만 <사이렌>의 소망은 너무나도 소박하다.

신화 속 세이렌은 뱃사람들을 홀리지 못하면 스스로 바닷물에 뛰어들어 죽는다. 그러니 목숨을 담보로 한 그들의 노래가 치명적인 유혹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사이렌>은 세이렌만큼 강한 유혹의 기술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소리’라는 공포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주는 호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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