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항상 부모님이 마련해준 직업을 택할 선택권이 있었다. 나는 교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고, 클로드 샤브롤은 약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랑수아에게는 가질 만한 직업이 달리 없었다. 부분적으로는 그래서 그는 그 많은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동년배인 시나리오 작가 클로드 드 지브레는 트뤼포에 대한 다큐멘터리영화 <도둑맞은 초상화>(1993)에서 그렇게 말한다. 지브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트뤼포는 영화로서의 삶 혹은 (오직) 영화로 수렴되는 삶을 열렬히 살다간 인물이었다. 이건 “인생, 그것은 스크린이었다”라고 말한 트뤼포 자신도 인정하는 바였을 것이다. 그의 삶이란 영화에 바쳐지는 것이었고 영화 같은 플롯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결국에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와 소통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역사상 가장 영화적인 인간이었던 그의 삶을 따라가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르주 투비아나(미셸 파스칼과 함께 앞서 언급한 <도둑맞은 초상화>를 만들었던)와 앙투안 드 베크가 쓴 전기 <트뤼포>는 그걸 가능케 해주는 책이다.
“조울증에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며, 급한 성격으로 쉽게 상처받는 다소 병적인 소년”이 “자신을 증오하는 독학자”, 공격적인 혈기를 지닌 도발적인 영화평론가, 결국에는 ‘내일의 영화’를 만들고 만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트뤼포의 일대기를 담은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무엇보다도 풍성한 사례와 그걸 묘사하는 요령있는 문장(과 유려한 번역)으로 가능해진 생생함에 있을 것이다. 예컨대 그가 군대에 적응하지 못해 탈영했고 그래서 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그를 앙드레 바쟁이 받아주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짤막한 인물 소개글에서는 아마도 이처럼 간단히 요약될 그의 삶의 한 부분이 <트뤼포>에서는 거의 육체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을 때에서야 당시 트뤼포가 겪었을 고독, 아픔, 모욕, 체벌 등을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트뤼포>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자격이 있는 소재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한 시대의 문화사를 배경으로 한 ‘휴먼드라마’라고 표현해도 될 이 책의 주인공은 기본적으로는 영화와 여자를 사랑한 남자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 주인공의 다른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그는 때로 파렴치한 행동을 하면서도 출세의 길에 다가서려는 남자로 보이기도 하고 또는 도발적인 ‘앙팡 테리블’이었다가 끝내는 변절하고 만 남자로 다가오기도 한다. 트뤼포의 그런 다양한 모습들에 저자들은 어떤 설명이나 해석을 붙이지 않는다(마치 러닝타임 대부분을 트뤼포 주위 사람들의 인터뷰로만 채운 <도둑맞은 초상화>의 방법론과 유사하게). 저자들은 오로지 트뤼포가 쓴 기록들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 같은 ‘사실들’에만 의존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했던 듯 보인다. 그러면서 우리의 눈으로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한 인간에 대한 미스터리를 살려놓고 또 그럼으로써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