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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맨 리턴즈> 읽기 ② 미국 대중문화의 가장 무거운 신화

지적이고 섬세한 이야기

157분 안에 미국 대중문화의 가장 무거운 신화를 풀어야 하는 <수퍼맨 리턴즈>는 놀랍게 힘이 넘치고 있다. 영화가 설령 한방에 뿌리를 흔드는 힘은 없을지언정 브라이언 싱어는 모든 만화책의 원전쯤 되는 슈퍼맨을 지적이고 위트있는, 심지어 섬세하기까지 한 이야기로 만든다.

그렇다고 <수퍼맨 리턴즈>가 그 기원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다. 싱어는 영화를 폭풍우 쏟아지는 어두운 밤 임종을 앞둔 노파(노엘 닐, 40년대 <슈퍼맨> 시리즈의 로이스 레인)가 수억원대의 재산을 젊은 연인에게 물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인은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사랑해, 렉스 루더”라고 말한다. 성취감에 가득 찬 렉스 루더는 가발을 벗어젖힌다. 한편 미국 중부 어딘가에 또 다른 노파(에바 마리 세인트)가 창밖을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그때 불덩어리 우주선이 떨어지고 벌거벗은 남자가 옥수수 밭에 나동그라진다. “클라크!!??” 희망에 찬 노인은 목소리를 떨며 외친다. 아들이 돌아온 것이다. 이쯤 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 못 챘다면 국토 안보부로 돌아가 미국 영주권을 돌려줘야 하겠지.

악한 천재 렉스 루더(케빈 스페이시)와 애인 키티(베티붑 가발을 쓴 파커 포시)는 슈퍼맨의 고독의 요새(알버트 스피어가 디자인한 얼음 궁전)에 침입하여 (크리스털에 담긴) 우주의 비밀을 배운다. 슈퍼맨 클라크 켄트(신인 배우 브랜든 라우스)는 5년 동안의 휴가에서 돌아와 <데일리 플래닛>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전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로이스 레인(케이트 보스워스)은 “우리는 왜 더이상 슈퍼맨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란 기사로 퓰리처상 수상자가 되었고 천식을 앓는 어린 아들이 있다.

긴장하고 성급한 레인은 벌써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슈퍼맨은 아직 할 일이 있다. 땅으로 추락하는 비행기도 구해야 하고 자신의 파란 눈을 겨냥한 총알도 막아야 한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도시의 참사들이 초능력을 가진 슈퍼맨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하지만, 레인을 만나 날아다닐 시간은 있다. 각진 얼굴에 깔끔하게 생긴 브랜든 라우스는 부드러운 시선을 지녔고 가끔 엑스레이 비전을 사용한다. 모든 것을 들으며 도청하는 그지만 상처도 쉽게 받아 싱어는 슈퍼맨을 가짜 바그너 음악에 맞춰 죽어가는 천사처럼 팔을 늘어뜨려 하늘에서 추락시킨다(결국 응급실에 안착되지만).

두편의 <엑스맨> 영화에서 싱어는 많은 부적응자들을 보여주었다. 마이클 도허티와 댄 해리스가 쓴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단지 하나 아니 둘 정도가 나온다(클라크 켄트가 슈퍼맨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볼 수 없는 로이스 레인까지 치면 아마도 셋). 그러나 슈퍼맨이 보통 사람 행세를 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스페이시가 연기한 렉스 루더는 슈퍼 필요악이 된다. “크리리리립토나이이트”라고 혀를 굴려대며 느끼는 쾌락은 강철 사나이가 얻어터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가 보여주는 차가운 성적 즐거움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주인공의 괴로움과 부활을 강조하며 싱어는 포스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웅의 개념을 유희하고 있다. 못할 건 뭔가? 1930년대 클리블랜드의 두 유대인 젊은이들에 의해 창조된 슈퍼맨은 예수 그리스도와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고 결코 그 범우주성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세 가지가 신문을 팔리게 해.” <데일리 플래닛>의 편집장, 페리 화이트(프랭크 란젤라)가 레인에게 하는 말이다. “참극, 섹스 그리고 슈퍼맨.” 영화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지만 슈퍼맨은 어느 곳이건 간다. 세계 곳곳에서 보도되는 그의 활약이 <데일리 플래닛>의 뉴스부에서 보여진다, 특히 독일에서. 싱어의 펄프 픽션들은 계속 홀로코스트에 대한 언급을 담고 있고 <수퍼맨 리턴즈>에서도 슈퍼맨이 크립톤 행성에 돌아가는 것이 폴란드의 역사 교육처럼 다뤄진다. “그곳은 공동묘지였어요”라고 양어머니에게 말했다. “나만 홀로 남았어요.” ‘메트로폴리스’에 세워져 있는, 지금은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남쪽에 위치한 유대인 전통 박물관도 보인다. 다른 종교들도 숨겨져 있지만 (루더는 자신을 새로운 프로메테우스로 상상한다) “진실, 정의, 미국식 삶”에 대한 애착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영화의 끝, 슈퍼맨이 레인의 창밖에 떠 있을 때 이 크립톤 최후의 아들은 완벽한 삼위일체로 자신을 승화한다. 성부이자 성자이고 로이스와 아이 주변을 맴도는 성령이기도 하다. 그는 여자를 안심시킨다, “난 항상 곁에 있어”. 섹스와 참극 그리고 팔아야 할 신문이 존재하는 한 그럴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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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