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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진실’을 찾아나섰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세계

지난 6월18일 외신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기록이 경신됐음을 긴급 타전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이 2004년 소더비 경매에서 세운 1억416만달러를 가볍게 뛰어넘은 작품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매매가는 물경 1억3500만달러(약 1297억원)였다. 화장품 재벌인 에스테 로더가의 둘째아들 로널드 로더가 이 작품을 사기로 결정한 데 걸린 시간은 단 30초. 27억달러를 보유한 미국 내 83위의 부자라 해도 그림 한점에 쓴 액수치고는 통 큰 돈 놀음이었다. 이 작품은 7월13일부터 뉴욕 맨해튼 노이에 갤러리에서 클림트의 대표작 4점과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신문에 실린 문제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본 사람들은 “아, 이 그림!”이라고 아는 척했다. 황금색 바탕에 장식적인 문양으로 수를 놓은 듯한 작품은 많은 이가 한번쯤 세계미술사 책에서 봤거나 프린트물로 방을 장식하고 싶었던 <키스>의 그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배경 속에서 연인 한쌍이 입맞춤의 황홀경에 빠져 있는 <키스>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이중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걸작이었다.

라울 루이즈 감독의 신작 <클림트>가 한국에 도착했다. 황금빛 관능으로 세상을 주물렀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진실은 무엇일까.

황금빛 요설이다. 기름진 관능이다. 세기말의 에너지다. 몸으로 흔드는 에로티시즘의 깃발이다. 성적 환희는 남녀 생식기의 상징 문양으로 반짝인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한 세기가 끝나가는 늙은 대륙 유럽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욕정을 그림으로 노래한다. 저물어가는 구(舊)시대를 수밀도 같은 여성 육체로 밀어내고 찬란한 황금 비(雨) 속에 오는 세기의 희망과 환희를 그려넣었다. 발기 부전의 땅을 여체로 일으켜 세우려는 화가의 욕망은 본능처럼 보인다. 뿜어져 나오는 황금색 문양은 성기의 분출처럼 끈적인다. 몽롱한 환영은 19세기의 확실성을 거부한다. 클림트는 인류의 영원한 주제라 할 ‘에로틱’을 탐구하면서 ‘잘난 체하는 아버지들을 괴롭혀온’ 죄의식을 없애버렸다.

본능적 삶의 탐구를 위한 분리파 결성

구스타프 클림트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외쳤던 ‘비엔나 분리파(分離派)’의 대장이었다. 말하자면 반란의 지도자다. 아버지 세대의 고전적인 사실주의 전통을 거부하고 거기서 떨어져나와, 즉 분리돼 현대 인간의 진짜 얼굴을 찾으려 했다. 예술의 위계질서와 경계를 가르는 구분을 없앴다. 건축, 가구, 공예, 도시계획 등 생활의 모든 국면에 총체예술로 다가갔다. 젊은 화가들을 끌고 나와 분리파를 결성하면서 클림트는 본능적 삶의 탐구라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현대인의 진정한 모습이요, 현대 인간에 대한 진실한 발언이라 믿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분리파’는 아버지 세대 스스로가 불러들인 꼴이었다. 클림트와 동시대를 산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분석에 따르면 그렇다. 츠바이크는 “늙은 제국 오스트리아가 ‘안정’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서 ‘청춘’을 불신하고, 과격한 변화를 원하는 젊은이들을 ‘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차단하거나 압박해야만 하는 위험한 요소’로서 규정한 결과”라고 썼다. 클림트는 벌거벗은 여성상에 벌거벗은 진실을 담았다. 은폐돼온 성을 발가벗김으로써 20세기는 인간을 재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분리파’가 창간한 잡지 이름이 <베르 사크룸>(성스러운 봄)이었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분리주의 운동에 뛰어든 젊은이들은 자신들에게 낡은 인간을 새 인간으로 거듭나게 할 재생 기능이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정체된 채 고여 썩어가는 문화를 과거로부터 구해내려는 열정이 클림트에게는 성애로 나타났다. 분리파가 고안한 상징 가운데 하나가 예술의 거울을 현대인에게 갖다대는 ‘누다 베리타스’(벌거벗은 진실)다. 라울 루이즈 감독이 영화 <클림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거울을 쓴 것도 이 선상에 있다. 클림트는 1899년작 <벌거벗은 진실>에서 거울을 든 나체 여성을 그렸다. 화가는 현대인에게 텅 빈 거울을 갖다댄다. 화가는 그 거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도 욕망으로 들끓는 심리적 인간을 찾았을 것이다. 그래서 클림트의 여성은 굴곡이 진 섹시한 몸매로 천천히 바뀌어간다. 이제 ‘누다 베리타스’가 아니라 ‘베라 누디타스’(진짜 누드)다.

‘벌거벗은 진실’을 찾아서

클림트는 여성을 관능적 존재로 보았다. 영화가 묘사했듯 벌거벗은 모델이 늘 화가 주변을 에워쌌다. 그는 철저하게 여성의 쾌락과 고통, 삶과 죽음의 잠재력을 발가벗겼다. 워낙 과작인데다 전쟁으로 작품이 파괴돼 남아 있는 그림이 적은 클림트이지만 그가 남긴 스케치와 드로잉은 엄청나게 많다. 그만큼 클림트는 끊임없이 인간을, 특히 여성을 탐구했다. 그가 모델들과 몸을 섞고 10여명의 아이를 둔 까닭도 본능적 여성 연구의 결과였다.

키스

클림트의 여성은 액체를 좋아한다. 그가 즐겨 묘사한 여성상은 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며 끈적거리는 느낌의 관능적 만족감에 반쯤 잠이 들어 있다. 여성은 영원히 알 수 없는 관능의 축복을 받은 여신들처럼 보인다. 클림트의 남성은 거세 공포에 지배된다. 남자 희생자는 수동적이고 절망에 빠져 있으며 무능하다. 그림 속에서 남성은 육욕의 덫,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궁 모양에 잡혀 있다. 자궁과 남성의 관계는 클림트 예술의 핵이다.

클림트는 발가벗은 여성을 풍부한 장식으로 포장해 관능적 화면으로 완성했다. 이를테면 1907년작 <다나에>에서 풍만한 넓적다리를 화면 전면에 그득 그린 화가는 황금비를 쏟아지게 해 이 금발 미녀가 느끼고 있는 관능의 기쁨을 암시한다. 대표작 <키스>에서 남성의 망토를 장식하고 있는 문양은 남근을 상징하는 검은 장방형이다. <베토벤>에는 발기한 남근과 비슷하게 생긴 원기둥 안에 황홀경에 빠져 있는 젊은 남자가 등장한다. 화면은 모두 생물학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성적 환희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자연 상징물이 된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누구인가

시대를 초월한 에로티시즘의 전위화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황금빛 섬광으로 물들인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 황홀경의 그림으로 교접을 꿈꾼 화가다. 그가 새삼 주목받는 까닭은 시대를 뛰어넘는 영원한 에로티시즘의 화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1862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난 클림트는 보헤미아 출신의 귀금속 세공사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의 수공예품을 보며 자랐다. 1876년 열네살에 빈 응용미술학교에서 모자이크 기법과 이집트의 부조 등을 익히며 다양한 장식 기법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 열여덟 이른 나이에 동생 에른스트 클림트, 학교 친구 프란츠 마치와 빈 역사박물관의 장식을 맡아 이름을 알리며 뛰어난 건축 장식가로 손꼽히기 시작한다.

1896년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자신의 3부 대표작 ‘철학’, ‘의학’, ‘법학’을 빈대학 대강당에 그리기 시작했다. 앞 세대와의 분리와 결별을 선언한 ‘제1회 빈 분리주의 전시회’에 참여해 출품했다. 클림트가 디자인한 전시회 포스터가 공공 윤리를 해친다며 검열을 당해 결국 수정하는 난리를 겪는다. 분리주의 운동 잡지인 <베르 사크룸>(성스러운 봄)을 창간했다. 클림트는 세기말의 빈에서 청년 화가를 이끄는 개혁의 주역이자 유명 인사로 떠오른다. 동시대에 에드바르트 뭉크는 <절규>를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했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판하고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3번>이 초연됐다. 프로이트와 말러는 클림트의 작품세계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 인물이다.

1906년 클림트와 친구들은 10년 만에 빈 분리파와 결별하고 전위 그룹으로 거듭난다. 관능미 넘치는 남녀 초상과 자화상으로 이름난 에곤 실레를 만나 그의 정신적 후견인이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끝난 1918년, 평생을 매독으로 고생한 클림트는 죽음의 침상에 누운 자신을 스케치하는 에곤 실레를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사랑과 죽음의 윤회에 묶인 맹목적 에너지

클림트는 자기 자신이나 미술에 관한 글을 남기지 않았다. 자화상도 그리지 않았다. 글쓰기를 부담스러워한 그가 남긴 짧은 글이 하나 있다. “나는 말하고 쓰는 일에는 재주가 없다. 특히 나 자신이나 작품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극히 간단한 편지를 써야 할 경우에도 마치 뱃멀미를 걱정하는 사람처럼 공포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러므로 예술적인 혹은 문학적인 자화상은 기대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 일은 조금도 유감스럽지 않다. 나에 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 화가로서의 나를 말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뿐이므로- 내 작품을 보고 찾아내면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나에

말 그대로 클림트는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냈다. 작품을 통해 본 그의 우주관은 ‘쇼펜하워적’이다. 의지로서의 세계, 무의미한 출산, 사랑과 죽음의 끝없는 윤회에 묶인 맹목적 에너지라는 것이다. 클림트가 숭배했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1896년에 완성한 철학적 교향곡 3번의 노랫말은 그대로 클림트 그림의 이론이 된다. “아, 인간이여! 귀기울이라!/ 깊은 한밤중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난 잠들었다. 잠자고 있었다./ 깊은 꿈에서 깨어나서 알게 되었노라./ 세계는 깊다고,/ 대낮이 알았던 것보다 더 깊다고./ 세계는 깊다./ 낮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다./ 세계의 슬픔은 깊다./ 욕망은 고통보다 더 깊다./ 슬픔이 말한다, 사라져라, 죽어라!/ 하지만 욕망은 영원하고 싶어하지./ 깊고도 깊은 영원성을 원한다네!”

클림트가 말년에 여성 초상화에 몰두했던 것은 순수하면서도 영원히 자신의 의지 속에 담아둘 수 있었던 것이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오감이 충족되어 행복하게 웅크리고 있거나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고 있는 여성에게서 클림트는 평화를 찾았다. 기존 질서에 맞서 그림으로 새 시대의 자유와 희망을 부르짖었던 ‘철학’, ‘의학’, ‘법학’ 연작으로 스캔들에 휩싸였던 그는 오래 불화했던 세상과 타협한 듯 보였다. 자궁을 연상시키는 타원형의 꽃무늬 속에서 여성들은 안온하다. 가장 여성적인 것이, 가장 관능적인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클림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죽음 앞에서 해후한 진실

성애는 죽음과 등을 붙이고 있다. 클림트는 말년작 <죽음과 삶>에서 다시 한번 ‘벌거벗은 진실’의 붓을 꺼내든다. 뒤엉켜 흘러가며 고통에 잠긴 인간은 그 한복판에서 죽음을 본다. 관능에 몸을 떠는 한 무리의 인간에게서 떨어져나온 ‘죽음’은 건너편의 그들을 바라본다. 사랑은 인간 속에 머문다. 죽음은 인간 바깥에 머문다.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은 언젠가 닥쳐올 죽음을 잊을 수 있다. 에로스의 표현에 삶 전체를 던져넣었던 클림트는 이제 죽음 앞에서 진실과 해후한다. 더 말할 나위 없이 지극한 화려함으로 세기말과 세기 초를 장식했던 화가는 회화의 가치를 크게 높이고 진보의 발자취에 예술계를 큼직하게 동참시킨 뒤 원만한 중용의 길로 나아갔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을 때, 그는 평생 그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여성들 곁으로, 그 자궁으로 돌아갔다.

클림트의 1901년작 <유디트1>

쾌락의 세상으로 안내하는 팜므파탈

클림트가 사랑한 요염한 여성상의 대표 인물. 화가가 자신의 ‘황금 시기’를 열어젖힌 1901년작이다. 연인을 파멸과 죽음으로 이끄는 팜므파탈의 고혹적 이미지가 드러나 있다. 살짝 들어올린 얼굴, 반쯤 감긴 유혹의 눈길, 주춤하게 벌어진 입술, 풀어헤쳐 가슴이 드러난 옷섶 등이 팜므파탈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을 “낡은 보석 속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응축된 사악함”이라 표현했다.

<유디트1>은 액자와 그림이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클림트는 금속 세공사의 아들답게 금박, 대리석, 유리, 준보석 등을 재료로 매우 장식적인 대형 벽화를 만들었는데 다양한 액자 디자인이 남아 생활 미술을 중시했던 작가의 의도를 읽게 한다. 클림트가 즐겨 썼던 문양은 뒤에 ‘유겐트 스틸’(젊은 감각의 양식)이라 불리며 아르누보 양식에도 영향을 줬다. 특히 물결 모양의 연속 식물 문양은 아르누보 양식과 구별되는 ‘유겐트 스틸’만의 개성이다.

요염한 여성을 둘러싼 금박 문양은 쾌락의 세상으로 보는 이를 안내하는 일종의 거울이다. 따뜻한 색의 목재로 부드러운 느낌을 준 뒤 구리판을 덧대 파도무늬를 조각했다. 비잔틴 양식의 성상화를 떠오르게 할 만큼 화려한 액자 윗부분은 그림 분위기를 돋워주는 구실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