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히든>뿐만 아니라 미카엘 하네케의 모든 작업에 ‘원죄,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란 부제를 붙이련다. 하네케는 기이하게도 폭력의 피해자가 된 집단의 죄에 의문부호를 단다. 그들은 부르주아와 지식인, 나약함에 빠진 소시민인데 하나같이 난데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내쫓기고 감시를 당하는 공포에 면해서도 항변을 하거나 변호를 구할 수 없다. 그들에게 도덕적 의견 제시는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며, 그들의 영역을 지켜줄 영웅은 어디에도 없다. 하네케는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지는 형벌을 통해 폭력의 피해자들에게서 일종의 원죄의식을 캐낸다. 자기들의 권리와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누리는 현대 권력층의 대표 격인, <히든>의 주인공 조르쥬는 타인의 존엄성과 기회를 박탈하고 타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인물이다. 그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저지르는 죄를 근원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하네케는 그에게 원죄를 언도하고자 한다. 그리고 성경이 있어 인간의 원죄에 대한 수용이 가능했듯, 조르쥬의 원죄를 증명할 바이블로 비디오테이프가 선택된다. 과거 성경이 말씀의 기록이라면 21세기의 원죄부는 영상의 기록인 것이다. 그러나 하네케는 비디오테이프를 찍는 주체를 알려주는 법이 없어서, 그것은 권력층을 향한 감시가 숨겨진 채 끊임없이 행해질 거라는 무시무시한 공표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조르쥬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는커녕 거짓을 일삼는다. 그에게 죽음에 이르는 타자의 고통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대상으로 남을 것이며, 그는 자신의 가족을 지켰다는 안도감에 잠을 청한다. 하네케는 이 모든 소통의 부재와 소외와 불관용의 근원에 권력을 소유한 자의 탐욕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권력을 쥔 자에게 주어지는 공포는 언제까지 계속되고, 그들은 원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카엘 하네케는 아직까지 그에 대해 구제의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재로선 깜깜한 밤을 헤매는 자의 마음으로 묵시록적인 상황에 빠져 지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 기나긴 세월 동안 구원자의 탄생에 목말랐던 것처럼 하네케의 죄인들도 지난한 시간을 기다려야 함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PAL 소스를 사용한 듯 DVD의 화질은 좋지 않다. 유달리 덜컹거리는 첫 부분은 인상적인 오프닝 크레딧을 무색하게 만들며, 특히 산 자와 죽은 자의 아들이 만나는 마지막 장면은 유심히 살펴봐야 할 정도다. 부록으로 제공되는 메이킹 필름(사진, 31분)은 긴장감이 넘치는 현장 모습 외에 감독과 제작자, 배우들의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를 아울러 수록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