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시선의 끝 - 그 곳에서 만나는 진실
어느날 배달된 익명의 비디오테잎 : “너는 감시 당하고 있다”TV 문학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인 조르쥬와 그의 아내 안느는 중산층 가정의 평온한 삶을 누리며 살고있다. 어느날 그들에게 자신들의 일상사를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이 배달되고,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계속적으로 배달되는 비디오테이프와 그림은 점점 더 그들의 은밀하고 사적인 생활들에 관한 내용과 결부되면서 그들의 불안은 증폭된다.
감춰진 진실 끝에서 드러나는 핏빛 기억들….
범인만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던 그에게 과거의 잊혀졌던 기억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게 된다. 어린시절, 숨기고 싶었던 기억은 악몽이 되어 그에게 돌아오고 조르쥬는 범인을 직접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러나 범인을 알아낸 순간, 조르쥬는 더욱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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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미카엘 하네케가 던지는 진실게임more
"영화 안에서의 진실, 미디어 안에서의 진실, 이것은 다 조작이다. 나는 이미지 속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기법을 통해 '어떤 것이 진실인가'와 같은 질문을 관객에게 제시했다. 이런 물음은 나 스스로에게도 항상 제기하는 문제들이다. 나는 관객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단지 끊임없이 자극하고 그들과 소통하려 하는 것 뿐이다."
--미카엘 하네케 인터뷰 중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잔혹한 스릴러 <히든>은 첫 번째 쇼트부터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주택가 앞, 고정된 앵글로 촬영된 조르쥬의 집 앞 풍경을 3-4분이 넘도록 보고 있자면, 불쑥 한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가 개입되면서 그 화면은 갑자기 리-와인드 된다. 관객은 극장에 앉아, 조르쥬의 집에 보내진 정체불명의 테이프를 보고 있는 주인공 시점 그대로 같은 화면을 보게 되는 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렇듯 <히든>은 특정한 쇼트의 시점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그 동안 우리가 미디어 안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만 있었던 것들,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진실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미디어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하네케 자신의 작품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관객과 소통하지 못하고 왜곡된 진실을 주입시키기에 급급한 요즘의 주류 영화들이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옳고 그름, 문제와 정답을 강요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그저 화두를 풀어놓기만 할 뿐, 그 질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답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은 모두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상처를 준 자와 상처를 받은 자,
그들의 아픔에 다가가는 영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회피하려는 프랑스의 비겁한 지식인 조르쥬,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집에 살고 있던 알제리인 마지드를 모함했고, 결국 그에게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겨줬다. 정작 조르쥬는 40년 동안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지만, 계속되는 위협을 통해 상기된 그의 과거는 사실 도망치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추악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록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히든>이 지극히 개인적인 죄의식에 관한 영화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이 영화는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적인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영화 내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132년간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온 알제리는 1954년부터 독립 운동을 해왔고, 1961년 10월에는 3만 명이 넘는 알제리인이 파리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했는데, 이때 200명 이상의 알제리인이 프랑스인들에 의해 세느강에 빠져 죽거나 실종되었다. 바로 그곳에 영화 속 마지드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고, 순식간에 부모를 잃은 마지드는 조르쥬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 살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드는 조르쥬의 거짓말로 인해 그 집에서 쫓겨났고, 40년 전 그날은 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다. 결국 조르쥬라는 개인의 과오는 한 나라의 용서 받아야 할 과거를, 4세대 동안 되풀이 된 식민지 지배의 상처를, 그리고 지금까지도 되풀이 되는 프랑스 내 이민자 차별에 관한 담론들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 국가적으로 자행된 악행들과, 그것에 의해 남겨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들. 하네케는 <히든>을 통해 그 상처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어, 역사적 과오와 한 지식인이 경험하게 되는 불안과 공포를 교묘히 엮어낸 날카로운 심리 스릴러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