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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촬영현장을 가다 [2]
이다혜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6-07-11

이훈규 감독의 <146-73=스크린쿼터+한미 FTA>(가제) 촬영현장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됐는가

<위험한 정사>를 봤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들에게 다시 묻는다. 한국영화 <위험한 정사>를 봤는가. 이 도발적이고 섹시한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1988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타워즈, 별들의 전쟁. 88년 올림픽 즈음 맥도널드 1호점이 서울에 문을 열고 극장가에는 한국영화 <매춘>과 최초의 미국 직배영화 <위험한 정사>가 나란히 개봉되었다. <위험한 정사>를 상영하는 객석에 영화인들이 뱀을 풀어놓은 사건도 일어났다. “화합과 전진이라는 구호 아래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서울올림픽 뒤에는 한국 영화시장을 미국에 개방하라는 치명적 유혹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경제는 개방과 경쟁이라는 논리에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과 위험한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을 필두로 대통령들의 ‘넓은 세계’를 향해 가자는 발언들이 이어진다. 이훈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위험한 정사, vol 2004>는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가 한국 근대 경제사 속에 자리잡는 과정을 다양한 뉴스와 영화, 인터뷰들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스크린쿼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좀더 깊이 들어갔다. 문제의 핵심으로 깊이.

6월23일 오전 7시,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열린 한경련 포럼. 조찬을 함께한 이 포럼의 연사는 한-미 FTA 상대표단 수석대표인 김종훈 수석대표였고, 주제는 한-미 FTA 1차 협상 주요 결과를 중심으로 한 한-미 FTA 협상과제와 추진방향이었다. 9시를 약간 넘겨서 끝낸 이 자리는 시종일관 ‘우아하게’ 진행되었다. 1차 협상 주요 결과를 김종훈 수석대표가 발표하고 나서 받은 질문들은 “그간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됩니다. 수고 많으시네요” 하는 식이었다. 이날 배포된 열장 남짓한 인쇄물이 어떤 분야에 대해서건 모호한 상황만을 나열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날 질의응답의 고요함은 신기에 가까웠다.

6월27일 오전 10시, 서울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있었던 제2차 정부합동 한-미 FTA 공청회. 1차 협상 결과에 대해 배포된 자료의 내용은 23일 포럼 때의 것과 동일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세션별 발언자들의 발표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종훈 대표는 개회사를 끝맺지 못했다. 7월10일 한-미 FTA 2차 협상이 있을 때까지 유일무이할 이번 공청회의 진행방식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1차 공청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공청회가 ‘2차 공청회’라고 명명된 것에 대한 불만과 한-미 협정문 초안 내용의 공개 요청 무시에 대한 불만, 발언신청을 했으나 거절된 FTA 반대 단체들의 항의로 개회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결국 이날 제대로 끝난 행사는 국민의례뿐이었다. 1차 공청회가 제대로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항의가 이어지자 못내 억울했던 김종훈 대표가 한마디 한다. “지난번엔 제가 안 했습니다.” 1차 공청회라고 정부쪽이 주장하는 2월2일의 공청회 다음날인 2월3일 한·미 양국은 미 의회 의사당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는데 협상단 대표가 2월3일부터 일을 시작한 셈이다. 아무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한-미 FTA 문제가 진행되고 있다는 추측을 뒷받침하는 발언인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이날 공청회에 대한 주요 언론들의 보도는 “한-미 FTA 공청회 또 파행”이었다. “욕설, 몸싸움, 반대시위로 파행”이라는 친절한 부연설명도 곁들여졌다. “왜 욕설과 몸싸움이 난무했는가”에 대한 부분을 정중하게 대폭 생략한 매체들도 많았다. 이훈규 감독이 이 과정을 일일이 카메라에 담는 것은 그래서다. ‘진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TV뉴스가 알려주지 않는 것, 신문보도가 숨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훈규 감독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반대시위 다큐멘터리의 영문자막 번역작업을 하면서였다. 신자유주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 구조의 문제였다. 이훈규 감독은 2002년 11월4일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제1회 유럽사회포럼에 시민방송(RTV)의 지원을 받아 참가했다. 인구 40만명의 도시에 포럼을 위해 참여한 인원이 100만명이라는 사실은 이훈규 감독에게 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의 좌파들이 한데 모인 자리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도 그곳이었다. <잘려나간 평화, 데이지 커터>라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다큐를 만들던 당시 국내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전쟁 반대의 논리라는 게 평화를 위해서라는 것뿐이었다. 전쟁 뒤에 자본주의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국내외의 포럼에 참여하기 시작하고 국내에 없으니까 해외로 가서 신자유주의에 어떻게 반대하는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2003년 11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이 APEC 회의를 다녀와서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를 시사했다. 영화인회의쪽에서 이훈규 감독에게 다큐멘터리를 찍자는 제의를 해왔다. 스크린쿼터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 이훈규 감독은 흔쾌히 응낙했다. 2003년부터 영화계 내부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회의가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다큐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모아 <위험한 정사, vol 2004>를 완성했다. 그리고 한-미 FTA 문제가 터졌다.

이훈규 감독이 한-미 FTA에 관련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1인시위나 칸영화제에서의 스크린쿼터 사수 시위를 모두 기록하고 동시에 각종 포럼이나 공청회 등의 기록에 열성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이훈규 감독의 다큐 제작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투쟁하는 다큐도 중요하지만, 나는 투쟁하는 다큐는 지양한다. 투쟁에 너무 매몰되거나 개인이 너무 한 집단에 매몰되면 큰 틀을 자꾸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서다. 2003년 칸쿤에서 열린 제5차 WTO 각료회의 시위 때 이경해 열사가 자결했을 때도 취재를 했는데, 그가 숙소에 남긴 유서 같은 것들의 흔적을 찍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걸 일부러 기록을 안 했다. 편집할 때 자결하는 장면들도 일부러 뺐다. 추도식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개인에 너무 몰입하면 구조적인 문제를 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상징으로서, 이경해 열사가 한국 농민인데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죽음의 이유는 무엇인가, 살인범은 누구인가를 드러내자고 생각했다.”

이훈규 감독은 스크린쿼터와 한-미 FTA 관련 다큐는 다이렉트 시네마로 만들 생각이다. 내레이션처럼 주관적인 해석을 배제하고 이해 당사자인 영화인들이 어떻게 대처했는가, 한-미 FTA 문제에 대해 무엇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투쟁하는가를 가감없이 보여주려고 한다. 스크린쿼터와 한-미 FTA 취재를 하면서 이훈규 감독은 영화스탭노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화스탭노조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된 싸움이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훈규 감독이 바라보는 방식으로 만들 생각이다. 처음에는 교육용으로 배포하기 좋게 설명적인 멜로영화, 문제가 많으니까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가서 깔 수 있는 데까지 까겠다는 에로영화와 싸움이 많이 일어날 테니 액션영화, 이렇게 세편을 찍자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어차피 같이 터지는 상황이니까 셋을 묶어서 부산영화제에 내볼 생각이다. 스크린쿼터 싸움 안에 사용자와 노동자가 같이 있고 민주노총은 사용자가 있는 집단과 연대해서 싸우고 있는 코미디와 같은 현실을 드러내는 다큐가 될 것이라는 게 이훈규 감독의 설명이다.

이훈규 감독은 일단 칸영화제서 취재한 것을 23분 분량으로 편집해서 KBS <열린채널>에 내볼 생각이다. 같은 내용을 1시간짜리 만들어서 공중파 TV에서 방영할 방법을 찾는 것도 그가 해야 할 일이다. 스크린쿼터와 한-미 FTA 문제를 중간정리해서 가을쯤 완성할 예정이기도 하다. 바쁜 올해 일정을 끝내고 나면 뉴스 A/S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다. 뉴스를 생산하는 방송사들이 A/S가 없는 일회성 보도를 하고 있는 현실의 심각성 때문이다. “뉴스 자료들을 검색하다보면 나도 놀랄 때가 있다. ‘이렇게 과격한 방송을 한 적이 있단 말이야?’ 하고. 사건이 터진 직후에는 방송사쪽도 크게 번질 줄을 모르니까 아무 이야기나 한다. 그런 뉴스 보도들이 너무 센 것들이 많아서 왜 내가 독립영화를 하고 있지 싶을 때도 있다.” 현실이 너무 섹시하니 다큐도 섹시하고 재미있어질 수밖에 없다. 우울한 대~한민국의 2006년이다(<위험한 정사, vol 2004>를 비롯한 이훈규 감독의 활동 내용과 몇몇 다큐들은 홈페이지( www.studioiscream.org)를 통해 볼 수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라도 지켰으면 좋겠다”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대변인 양기환 인터뷰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은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대변인을 겸하고 있다. 양기환 대변인은 6월27일 있었던 제2차 정부합동 한-미 FTA 공청회 초반부터 공청회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FTA 반대입장을 고수하는 쪽의 항의로 공청회가 중단된 뒤, 주최쪽이 공청회를 다시 열겠다는 말도, 이날 예정되었던 공청회를 끝까지 하지 않고 그냥 공청회가 파행이 되건 말건 공청회를 열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뿐이라는 양기환 대변인의 발언은 사실로 드러났다. 2차 공청회는 결국 예정된 행사를 단 하나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공청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일종의 정부쪽 음모가 아니겠느냐는 발언을 했다. =FTA 훈령에 따르면 협상은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절차 중 하나가 이 공청회다. 2차 협상 전에 공청회와 전문가 의견수렴 등 일련의 과정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 공청회를 다음으로 미루어서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음모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정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여러 절차적 문제가 제기되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공청회 파국이 가십거리로 전락해 반대자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그냥 진행하는 게 좋다는 식의 여론몰이가 될까봐 걱정된다.

-WTO 규정에도 맞는 스크린쿼터를 양보하면서 협상의 카드로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하는 정부의 태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스크린쿼터는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위축될 이유가 없다는 거다.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까지 해놓고 스크린쿼터 카드를 협상에서 쓴 것도 아니고, 맞바꿔 얻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공청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협상 테이블에 나가서 미국과 싸울 것이라고 믿기는 힘들다. 공청회라는 것이 법령에 의한 요식행위로 전락한 현실에서 그 요식행위마저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발언을 했는데. =정부의 눈높이는 여전히 70∼80년대에 있다. 그 시대에 해왔던 외교, 통상, 안보 3개의 축만 알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절차적 민주주의라도 지키면 좋을 텐데, 저들은 그런 걸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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