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 이따금 등장하는 폭탄주는 폭탄과 술이라는 이질적인 말의 조합이다. 이는 즐거워야 할 술자리가 실은 일상이라는 전쟁터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폭탄주의 기원은 출처마다 제각각이다. 제정 러시아 때 시베리아 유형수들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1900년대 초 미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즐겨 마신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가 폭탄주의 원조다, 1970년대 미국 항구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문화다, 등등 설이 분분하다. 한국에선 1980년대초 신군부와 정치계·법조계·언론계 인사들의 술자리에서 탄생한 음주문화라는 게 정설이다. 알코올 도수를 인체에 가장 빨리 흡수되게 하는 20도로 맞추고, 맥주의 탄산가스로 알코올 흡수를 재촉한다는 매우 성급한 술문화라는 점에서 신군부의 세계관과 맥이 닿아 있다.
폭탄주 문화는 제조기법을 다양화하며 당대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다양한 제조법을 분류하면 크게 칵테일적·군사문화적·마초적·시사적인 제조법이 있다. 제조법의 기본은 뇌관(양주를 가득 채운 작은 잔)과 폭약(뇌관이 들어갈 만큼 맥주가 채워진 잔)이다. 칵테일스러운 제조법들엔 뽕가리주·드라큘라주·황제주 등등이 있으며, 소주·이온 음료·와인·드링크제 등을 활용한다. 군사문화적 폭탄주들로 대표적인 건 수류탄주와 충성주다. 수류탄주는 캔맥주 바닥에 구멍을 낸 뒤 맥주를 조금 따르고 양주를 넣어 맥주 캔을 가득 채운 뒤 살짝 흔들어 섞은 것. 캔을 따서 마시거나 빨대로 마신 뒤 빈 캔을 천장에 ‘투척’한다. 충성주 때로는 ‘마빡주’로 불리는 폭탄주 제조법은 이렇다. 맥주잔에 젓가락 두개를 걸치고 그 위에 양주잔을 놓고서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며 ‘충성’을 외치면 그 충격으로 양주잔이 맥주잔 안으로 들어간다. 마초적인 성문화가 반영된 이름들로는 가랑이주·콘돔주·사정주·비아그라주 등이 있다. 이름 자체에서 매우 노골적이고 뻔뻔하고 야만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때로 쌍끌이주나 황우석주처럼 당대 사회상을 반영하는 이름도 있다. 황우석주는 알맹이 없는 논문 조작을 빗대 뇌관에 양주 대신 맹물을 넣은 것. 폭약 없는 폭탄이라니 얼마나 허망한 이름인가. 폭탄주라는 이름 자체도 초현실주의적인 시 같지만, 황우석주만큼 초현실주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