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먹이 낳은 지 4주 되던 날 새벽 한국-프랑스전이 열렸다. 빽빽대는 애와 ‘전쟁 같은 밤일’을 치르고 나니 마침 경기 중이라 멀뚱히 봤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즈음의 젖먹이는 괴물에서 인간으로 넘어가기 전 단계다. 예측불허의 결과, 절대시간과의 싸움, 막판 체력 등 축구와 육아는 닮았다. 문제는 육아는 철저히 은폐된 비가시적 노동이라는 것이다. 혼비백산 비몽사몽 괴물과 씨름하는데 “아가는 잘 커? 진짜 귀엽겠다” 이런 문자 받으면 욕 나온다.
5주 전 편집장께서 어찌나 사려 깊게 필자의 사생활을 공개하셨는지(나처럼 사생활 복잡한 사람은 감추고 싶은 게 있다는 걸 몰라? 당신 혼자 깨끗한 척하지 마! 음, 거의 미쳐가고 있음), 몇몇 씨네리 독자들이 격려 메일을 날려주셔서 산후우울증 달래는 데 꽤,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빨리 당신들 곁으로 돌아가고파, 애 키우는 거 진짜 장난 아니야, 이 정도인지 몰랐어, 으허헝). 나의 우울증을 결정적으로 달래주는 건 월드컵이다.
나 빼놓고 세상이 돌아가면 어떡하나 전전긍긍 리모컨을 눌러대는 내게 공중파들의 월드컵 도배질과 경기 재방·삼방은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한 관대함의 극치이다. 이 글을 쓰는 이틀 뒤인 6월24일 한국-스위스전이 열리므로 책 깔릴 때는 구문이 되겠지만, 부디 태극전사들이 승승장구하길 빈다. 월드컵 기간에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한다-마라, 주권이다-위협이다 국제적 공방과 함께 ‘선생님’ 방북이 무산됐고, 대추리를 지키려는 이들의 단식이 무색하게 ‘무데뽀 철거’가 예고됐으며, 4조원의 국부가 자격없는 외국의 사모펀드 회사에 먹히도록 온갖 ‘도움주기’를 한 국가경제 최고 리더와 금융·감독당국 높은 분들의 작태가 드러났지만, 알 게 뭐람. 무슨 일이 생겼건 텔리비전에 안 나오거나 사람들이 관심없으면 그만이다. 그래야 나만 몰라 바보되지 않지. 24일 결과가 설사 안 좋아도 다른 팀 하나를 찍어 당선운동이든 낙선운동이든 오래오래 광풍이 이어지길. 진정 아이♡월드컵이다. 짝짝~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