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자들> <죽음의 리오> <심플맨>을 하나로 묶는 건 젊은이들의 춤장면이다. 인생의 한 절정을 구가하는 청춘은 그 환희를 춤으로 표현할 권리가 있다. 하나, 세 영화에서의 춤은 현실의 쓴맛이 묻어나는 것이어서 활력이 아닌 억압된 광기가 분출한다. 여기에 영화 한편을 더한다. 필립 가렐의 <평범한 연인들>이다. 더 킹크스의 <This Time Tomorrow>에 맞춰 춤추는 댄디한 모습의 일군의 젊은이들은 사실 68혁명의 패잔병들이다. 가렐은 그들에게서 혁명이 남긴 상처를 읽는다. 옆친구에게 “<혁명전야>를 봤냐”고 묻는 여자는 문득 스크린으로 얼굴을 돌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라는 이름을 말한다. 동지의 배신을 느낀 가렐이 비수를 날리는 순간이다. 가렐은 <몽상가들>의 주인공이자 자신의 아들인 루이 가렐을 다시 68혁명의 시간으로 끌고 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염병과 바리케이드의 밤이 카메라의 덤덤한 시선에 잡히기를 한동안. 그러나 진짜 영화는 그 밤이 지난 뒤에 시작한다. 도피자의 신세로 모여든 청년들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그래서 더이상의 혁명은 없다고 선언한다. <평범한 연인들>은 이제 남은 2시간30분 가까이 그들이 환멸의 늪에서 허덕이는 시간을 따라간다. 노동과 혁명의 장으로 되돌아간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마약과 쾌락과 사랑과 일상을 탐닉한다. 그리고 그들조차 모두 흩어진 뒤 홀로 남은 주인공의 예고된 죽음 뒤로 슬픈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권력도 나쁘지만 당신도 잘한 것은 없지 않냐고. 김수영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절망한 자의 상처만큼 복수를 되새김질하기에 좋은 무기도 없다. <평범한 연인들>은 혁명의 실패와 함께 스러진 동지에게 읊어주는 조사이자 지금의 젊은이를 위해 준비한, 멈출 수 없는 혁명의 목소리다. <엄마와 창녀>란 이름의 한편의 시와 말썽쟁이 여자를 얻었던 68혁명은 다시 30년 뒤에 <평범한 연인들>이란 기나긴 소설과 돌아누운 남자를 구했으니, ‘평범한 연인’은 그렇게 짝을 찾는다. 1980년 서울의 봄과 1987년 6월항쟁 사이에 20대를 보낸 뒤, 나는 친구들이 하나씩 평범한 가족과 일상의 굴레 속으로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끝까지 노동의 현장에 남았던 한 친구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 나는 궁금하다. 인간이 꿈을 잃고 지쳐 쓰려져 굴복하게 만드는 것은 시간의 권력일까 아니면 현실의 폭력일까. DVD의 부록으로는 68혁명기의 실험영화인 <잔비자르 영화>의 창조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그중 한명인 자크 레이날이 연출했다), 두개의 단편, 베니스영화제 스케치 등이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