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은 힘이 세다. 여자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남자들은 대체로 20대가 넘어서야 의상의 힘을 깨닫는다. 언제? 대체로 예비군 훈련 받으러 갈 때다. 군복만 입으면 평소 의젓하던 남자들도 수컷 냄새를 흘린다. 남자들만 있던 중·고등학교처럼 욕설과 음담패설이 거리낌없이 흘러나온다. 평소 욕이랑 안 친하던 나도 “새끼”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와 스스로 대견(?)한 적이 있다. 군복을 벗고 다닐 때는 아무 느낌도 없던 신경세포들도 군복 안에선 예민해진다. 평소에 봤으면 그냥 지나쳤을 여성의 노출에 일제히 눈길이 쏠리고 휘파람이 흘러나온다. 군복만 입으면 짤짤이(동전치기)를 하고 싶은 것도 기이한 현상이다. 게다가 배는 왜 그리 일찍 고파지고 단것은 왜 그리 먹고 싶어지는지. 예비군 훈련장에서 제시간에 밥을 안 준다면 분명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신기한 것은 군복만 벗으면 그런 궁기나 허세, 음흉함과 난폭함이 맥을 못 춘다는 사실이다. 옷에 주술적 힘이 있다는 걸 그런 식으로 알게 된다는 건, 음, 다소 부끄럽다.
온 나라가 붉은 물결을 이루는 요즘은 예비군 훈련장 못지않게 옷의 마력을 실감할 수 있는 때이다. 한국 대 토고전이 있던 날 붉은 악마 응원복을 입고 거리응원을 하러 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 유니폼이야말로 아프리카 주술사의 마법지팡이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저 옷만 입으면 절로 “대~한민국”이 나올 것 같고 기적 같은 승리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건 2002년에 대한 향수가 막강한 동력이 되어 나온 것이리라. 언론 보도를 보니 올해 응원복 패션은 4년 전에 비해 일정한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전에 보지 못했던 과감한 노출이 그것인데 거리응원을 나서는 이유엔 이런 볼거리(?)의 유혹도 있는 모양이다. 응원전을 엄숙한 시선에서 해방되는 코스프레 축제로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 응원을 위해 붉은 옷을 입을 것인가, 패션을 보여주러 혹은 놀기 위해 응원을 나갈 것인가, 두 가지가 헷갈리게 됐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안 그래도 다 똑같은 옷을 입은 모습이 한편으론 무서워 보이던 참이었다.
집단의 옷을 제외하고 옷의 힘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는 영상에서 발견된다. 어린 시절만 돌아봐도 <영웅본색>이 인기를 끌던 시절엔 바바리코트를 입고 주윤발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 많았고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 싶다는 욕망에 불을 질렀다. 아마 이런 일은 서구문화를 영화를 통해 가장 먼저 수입하던 60~70년대엔 더 심했을 것이다. 김수현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보면 그 시절 의상 담당자와 배우의 특별한 관계를 볼 수 있다. 과연 옷은 배우에게 무엇일까? 언젠가 <나쁜 남자>의 조재현씨에게 연기준비를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평소 자신이 입던 옷을 벗고 극중 캐릭터에 맞는 의상을 입는 순간 비로소 그 캐릭터가 되는 느낌을 갖는다는 말이었다. <나쁜 남자>를 위해 피부를 그을리고 머리를 밀었지만 그 옷을 입기 전까지는 캐릭터와 한몸이 되는 느낌이 없었는데 그 옷을 입음으로써 나쁜 남자 캐릭터와 일체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옷은 배우에게 캐릭터의 영혼을 입힌다. 바꿔 말하면 영화의상은 캐릭터의 영혼을 재단하는 작업이다.
이번주 특집기사는 영화에서 의상이 어떻게 결정되고 어떻게 제작되며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동안 촬영이나 미술에 비해 덜 조명받은 분야이지만 의상에 관해 눈여겨보는 일은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도 옷을 입어야 날개를 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