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액션물 <이온 플럭스>의 모태는 한국계 피터 정이 만든 MTV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애니메이션과 카린 쿠사마가 재창조한 실사영화의 기본적인 배경설정은 같다. 2011년 바이러스로 인류의 99%가 죽고, 트레버 굿차일드(마튼 크소카스)의 백신 덕에 살아남은 500만명만 완벽한 인공도시 브레그나에서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린 쿠사마의 <이온 플럭스>는 철학적이고 모호한 피터 정의 에피소드들을 단일하고 명료한 스토리라인으로 가지런히 정리했다. 가령 애니메이션의 이온은 “넌 누구 편이냐?”는 트레버의 질문에 “난 내 편이다”라고 대답하는 아리송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영화의 이온(샤를리즈 테론)은 처음부터 트레버 체제에 저항하는 반란군 모나칸의 요원으로 등장한다.
인류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브레그나는 평화롭게 보이는 외양과 달리 어두운 비밀과 음모가 숨겨져 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발생하는 실종사건은 함구되고 정권 핵심부에서는 권력 투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철저히 은폐된다. 이온은 트레버를 암살하라는 반란군 지도자 핸들러(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명령을 받고 브레그나의 심장부로 잠입한다. 그러나 트레버와 마주친 이온은 간헐적으로 재생되는 정체불명의 기억 때문에 혼란에 빠지고 결국 임무 수행에 실패한다. 여기서부터 ‘기억’과 ‘복제’라는 SF 단골 키워드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되고, 브레그나의 실체가 하나씩 벗겨진다. SF의 일반적인 특징처럼 이 영화의 갈등도 과학(혹은 문명)과 자연의 대립구도에서 비롯되는데, 그 심층에는 유한한 삶의 조건과 영생에 대한 욕망이 불협화음을 내면서 맞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죽지 못하는 것보다는 단 한번뿐인 삶이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는 주제의식은 일견 공감이 가나, 영생에 대한 공상이 너무 허망하게 끝나는 것 같아서 섭섭하기도 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 두 가지는 고난도 액션과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된 미래 도시의 비주얼이다. <매트릭스> 스타일의 현란한 액션은 몇 차원 업그레이드되었고, 밝고 산뜻한 이미지로 디자인된 도시 풍경은 <블레이드 러너> 계열의 어두운 비주얼과 차별된다. 게다가 ‘100 Most Wanted Bodies’ 프로그램에서 당당 2위에 등극한 샤를리즈 테론의 환상적인 몸매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거부하기 힘든 옵션이 추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