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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의 유하 감독 [1]
이종도 사진 오계옥 2006-06-20

<말죽거리 잔혹사>가 억압적인 군사독재 시대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조폭의 탄생을 계보학적으로 거슬러 올라간 작품이라면 <비열한 거리>는 남루한 현실 속에서 조폭이 어떻게 기능하고 소비되는가를 탐색한 작품일 것이다. ‘경마장’과 ‘세운상가’ 사이에서 자본주의적 욕망의 뒷골목을 노래하던 시인은 이제 조폭성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조폭성에 기대는 거리의 비열함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비루한 카니발의 거리는 <비열한 거리>의 내용이자 동시에 시인이자 감독인 유하가 걸어온 길이기도 할 것이다. 유하를 만나 그의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물었다.

아이러니. 시인이 꿈꾼 첫 영화는 갓 잡아올린 펄떡이는 물고기였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 촬영현장에서 유난히 붉고 진한 오줌만 누었다. ‘이쯤에서 떡치는 장면을 넣어라’, ‘저쯤에서 삼각관계를 넣어라’는 제작자의 압박은 나중에 돌이켜보면 고마운 현실적인 충고였지만, 그때 예민한 시인이자 감독은 현장에서 그게 지옥의 종소리처럼 들렸다. 피가 말랐다. 머리엔 쥐가 났다.

영화 데뷔작이 망하고 난 뒤 시인은 스트레스로 간이 아파서 1년을 꼬박 쉬어야 했다. 그 뒤 두 번째 작품까지 그는 글품을 팔아가며, 뜻하지 않은 유유자적 포즈로 ‘최저 낙원’을 누려야 했다. 자유인으로 살다가 종손으로서 받는 압박감 끝에 ‘인간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러나 만삭의 아내가 돈을 벌러 나갈 때 자신은 시를 써야 하는 괴로움으로 심한 어지럼증을 느껴야 했다. 차승재 대표가 무협물을 써보라고 건네준 1천만원은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시인은 무협물을 왠지 잘 쓰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문학상 시상식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 원작을 만나면서, 차승재 대표의 섬광 같은 결단이 내려지면서(‘네가 독신 생활을 오래 해보았으니 잘하지 않겠느냐’는 권유와 함께) 시인 유하는 비로소 월경을 할 수 있었다. 결혼이라는 미친 짓을 한 지 얼마 안 돼 결혼 제도의 허위를 들춰낸 영화로 시인은 제대로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네 번째 작품 <비열한 거리>를 만들었다. 시인 유하를 지지한 건 평단이었지만, 영화감독 유하를 지지한 건 넓은 관객층이었다. 시인 유하는 늘 새로웠지만 감독 유하는 낡아 보이는 ‘이야기’의 힘으로 관객을 끌어모았다.

시인 유하가 낸 책들

우리는 그가 시인으로서보다 영화로 먼저 발언하고 싶어했던 시네마 키드였음을 알 필요가 있다. 어려서는 소설 <새의 선물>에 나오는 고창 극장이 그를 길러냈고, 훗날 감독이 된 김성수, 안판석, 특히 돌아간 시인 진이정이 영화 청년 유하를 북돋웠다. 유하가 자신의 목소리를 먼저 담아낸 그릇은 그럼에도 영화가 아니라 시였다. ‘키치 반성자이자 키치 중독자’(김현)로서 시인 유하는 1990년대와 대중문화를 시적인 불꽃으로 용접했다. 도시 욕망의 뒷골목인 ‘세운상가’에서 도시 욕망의 천민자본주의적 집적물인 ‘경마장’ 사이를 누비며 그는 대중문화에 대한 동경과 반성을 실천했다. 동시에 그는 ‘하나대’라는 상실한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서정시인이었다.

영화감독 유하는 1993년 시집과 같은 제목의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데뷔 이후 오랜 기간 침묵하다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영화로 월경한 뒤 작가주의적 영토와 상업주의적 영토 사이에서 ‘긴장하며’, 뛰어난 만듦새와 흡입력있는 이야기 그리고 남다른 의제 설정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자질을 보여줬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어 사랑을 이끌어가는 풍속도를,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지나간 70년대에서 미처 발견되지 못한 억압된 남성성을 말했던 그가 네 번째 작품 <비열한 거리>를 들고 나왔다. 작가가 장차 3부작으로 만들겠다는 ‘거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은, ‘말죽거리’라는 제도 교육 안에서의 폭력성이 사회 바깥에서 어떻게 번성하는지 보여준다. 한국사회가 은밀하게 소비하고 의지하고 꿈꾸는 조폭성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우리는 한 건달의 영락을 보며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조폭의 언어와 습관, 생활을 세밀하게 뜯어보는 데서 이야기의 핍진성을, 조폭이 한국사회의 상층부와 먹이사슬로 연결되는 데서 이야기의 두터운 층위를 헤아릴 수 있다.

첨단의 노래를 부르던 시인이 첨단의 장르인 영화로 월경한 뒤 고루해 보이는 ‘이야기의 힘’에 기대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아이러니. 여성적인 것에 대한 뛰어난 감식안(<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소유자가 언뜻보면 마초적인 액션영화를 만드는 아이러니. 매혹과 반성 사이에서 한 걸음씩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영화감독 유하에게 그 아이러니의 카니발(<비열한 거리>의 원제는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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