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다운로드’라는 말은 금기였다. 네티즌 중 절반이 경험했고 어둠, 불법, 도둑질의 대명사처럼 여겨진 ‘다운로드’는 영화계에서는 실존하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봉인된 존재였다. 그랬던 다운로드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영화 부가판권의 구원투수가 되어 돌아왔다. 워너브러더스홈비디오코리아는 MBC와 제휴하여 올 여름 모든 라이브러리를 합법적인 영화 다운로드를 통해 제공할 계획이다. 비로소 합법적 다운로드의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한국영화 부가판권 시장이 구조 변화를 기대하게 하며, 장기적으로는 동영상 콘텐츠를 둘러싼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산업의 결전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인다. ‘합법’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돌아온 탕자 ‘영화 다운로드’의 미약한 시작을 통해 창대한 산업적 결말을 점쳐본다.
‘다운로드’의 바람이 분다. 어둠의 세계를 통한 불법이 아닌 ‘합법적 다운로드’다. 진원지는 할리우드. 지난 4월부터 워너, 유니버설, 소니, 파라마운트, 폭스, MGM이 2002년 설립된 인터넷 사이트 무비링크(www.movielink.com)를 통해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5월31일 디즈니가 인터넷 사이트 시네마나우(www.cinemanow.com)에 동참하면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는 모두 다운로드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과거 24시간 동안 재생되던 한정된 구조와 다르게 이번 다운로드 서비스는 하드디스크나 DVD에 영구히 소장할 수 있다. 신작은 20달러, 과거 작품은 10달러로 가격이 책정됐고 신작의 다운로드 시기는 DVD 출시일과 동일하다. 마이크로소프트, 라이온스게이트, 블록버스터가 투자한 시네마나우에 디즈니가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개선된 요소는 PC뿐만 아니라 휴대용 디지털 기기에서도 재생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 디즈니는 “주고객층 아이들이 자동차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습관을 고려”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영구 소장, DVD와 동일한 출시 시기, 다양한 상영기기의 수용은 “할리우드가 영화 다운로드를 차세대 주력 윈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현재 무비링크는 한달 평균 10만건, 시네마나우는 3만5천건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 중이다. 무비링크와 시네마나우의 서비스는 DSL(Digital Subscriber Line: 디지털가입자망)의 환경에 따라 평균 35분에서 40분 정도의 다운로드 시간이 소요된다. P2P를 통해 다운로드의 속도와 효율을 높이자는 의견이 업계에서 분분한 상황이다. DVD 시절부터 홈비디오 부문을 선도했던 워너브러더스는 5월11일, 영화 불법 다운로드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치던 P2P업체 비트토런트(www.bittorrent.com)와 제휴를 발표한다. 어제의 적이 하루아침에 오늘의 동지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워너브러더스 홈엔터테인먼트 그룹 케빈 쓰지하라 사장은 “현재 불법 다운로드 사용자의 5%나 10%만 유료 고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워너를 비롯한 영화산업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합법적 다운로드, 국내에서도 올 여름 개봉박두
합법적 다운로드의 물결은 국내에도 그대로 굽이쳤다. 베텔스만과 제휴해 독일에서 다운로드 서비스를 준비한 워너는 세 번째 시장으로 한국을 택했다. 워너브러더스홈비디오코리아(이하 워너홈)는 MBC와 4월24일 디지털 콘텐츠 유통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오는 8월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워너는 콘텐츠를 다운로드할 서비스 공급자를 얻었고, MBC는 워너의 유통망을 통해 글로벌한 콘텐츠 배급을 도모하게 됐다. 워너브러더스홈비디오 아시아태평양/라틴아메리카 사장 마크 호락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디지털 콘텐츠 유통사업을 시작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성공적인 디지털 유통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다른 국가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너홈 이현렬 대표는 “극장에만 편중되어 침체된 국내 부가판권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워너홈이 국내에서 진행할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는 무비링크와 시네마 나우 같은 방식이며 기존에 출시된 DVD 전체를 서비스할 방침이다. 과금체계는 출시 DVD의 70∼80%선이 될 가능성이 높고, TV시리즈의 에피소드는 미국과 비슷한 편당 2천원대로 책정될 전망이다. 콘텐츠의 사용기간을 영구가 아닌 한달 정도로 제한하고 가격을 낮추는 방식도 고려중이다.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의 주요한 쟁점은 다른 윈도와의 홀드백(영화가 극장, 공중파, 케이블, DVD와 같은 각각의 윈도로 전환되는 시간의 간격) 문제와 디지털 저작권 관리 및 복제방지(이하 DRM)다. 워너홈 조홍연 부장은 “이 사업모델을 추진하며 우리가 가장 중시하는 요소가 기존 DVD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는 점과 불법복제에 대한 우려를 조금이라도 해소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워너홈의 영화 다운로드는 신작 DVD 출시와 함께 서비스될 계획이다. 조 부장은 “복제 방제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이 있었다면 시도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검증됐고, 향후에도 안전을 확신한다. DRM을 제공하는 쪽에서도 자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복제 방지를 위해서 워너홈은 마이크로소프트의 DRM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의 합법적 다운로드는 “개발이 아닌 정상화의 문제”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영업 환경, 전 국민이 모두 초고속통신망을 사용하는 환경으로 인한 불법복제와 저작권 침해, 부가판권이 거의 멸망 직전에 처한 영화시장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합법적 다운로드’라는 새로운 윈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업계는 일단 관망중이다. 시네마서비스 이원우 실장은 “직배사에서 먼저 한다고 해서 국내 메이저들이 선뜻 동참할지는 의문이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아이팟과 아이튠을 통한 음악사업의 성공을 계기로 할리우드 메이저들이 대거 진입한 미국 상황과 “국내는 다르다”는 인식이다. 국내에서 합법적인 영화 다운로드는 “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화의 문제”다. 없던 것을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음성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합법화하는 문제다. 국내 영화 메이저들이 다운로드라는 윈도를 방치했던 것은 기술적 접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로 인한 다른 윈도의 붕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제대로 된 시스템만 있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시작한다. 웹하드건 P2P건 우리 영화를 모두 올려놓은 상태에서 DRM에 의해 결제되고, 그 DRM이 절대 안 풀린다는 보장만 있으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망세는 외국도 마찬가지다. 칸영화제에서 발표된 비트토런트와 워너의 제휴에 대해 다른 메이저들은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비트토런트 어슈윈 네빈 대표는 “다른 할리우드 메이저와도 협상 중이다. 그들은 새로운 영화 배급의 모델과 혁신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상대를 거명하는 일은 거부한 바 있다. 복제방지 기술 외에도 문제는 남아 있다. 음악시장이 벅스뮤직과 소리바다와의 제휴를 통해 일정 부분 합법화를 일궈낸 사례를 감안하면, 영화쪽은 구체적인 협상 상대를 찾기 어렵다. 불법 다운로드의 주체인 P2P나 웹하드에 군소업체가 난립해 있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현실적으로 작은 업체들이 난립한 양상이기 때문에 빅딜을 도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콘텐츠는 공짜”라는 네티즌 인식이 가장 큰 장벽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영화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이다. 이 실장은 “우리나라는 DRM의 기술보다는 DRM을 깨는 기술력이 더 강세다. 특히 기업보다는 일반인들의 DRM을 깨는 기술이 강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는 풍조가 있다. 게다가 그런 행동이 위법이 아니고 자랑거리가 되는 분위기다.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이 불법, 위법에 대해 경계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반드시 영화에만 국한된 문제점이 아니다. 음악, 게임 타이틀, 방송에도 공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저작권법의 전반적인 개정을 비롯한 제도적 보완과 함께 국민적인 공감대가 우선해야 한다”는 게 실무자들의 공론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직배사의 본사에서 한국 온라인 시장의 심각한 상황에 대한 이해없이 일괄적으로 지시를 내려 서비스를 진행한다”는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디지털 콘텐츠의 유료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장애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업계에서는 “2천원이 넘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네티즌이 거부감을 갖는다”고 판단한다. 네티즌의 “콘텐츠는 공짜”라는 고정관념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합법적 영화 다운로드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워너홈 조홍연 부장도 “웹에서는 일정 수익을 발생시키고 트렌드는 휴대용 디지털 기기를 통해 끌어내야 한다. 불법복제 캠페인을 병행하여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합법적인 디지털 콘텐츠를 보는 문화를 만들어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능성도 없진 않다. 휴대폰으로 영화를 제공하는 SKT의 ‘씨즐’ 서비스는 통신망을 제공하는 이동통신 사업자가 통화료와 더불어 정보이용료를 과도하게 책정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탓에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동참을 꺼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통사가 최근 음악 서비스의 음원 사용을 둘러싸고 음반 업계와 충돌한 일도 유사한 사례. 이러한 상황에서 휴대폰이 아닌 PMP나 PSP를 중심으로 합법적인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있는 승부수다. 워너홈 조 부장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를 생산하는 하드웨어 업체와도 공동으로 프로모션을 해서 붐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휴대용 디지털 기기의 확산 추세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콘텐츠의 합법적 다운로드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성공하면 전체 영화시장에 긍정적인 효과
충무로가 워너홈의 합법적 다운로드 사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속과 고발을 중심으로 한 수세”에서 벗어난 “공격적인 시장 개척”이기 때문이다. 붕괴 직전의 위기에 몰린 영화 부가판권 시장을 살리기 위한 대책은 새로운 윈도일 수밖에 없다. 국내 제작사들도 이번 서비스의 성패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오기민 정책위원장은 “제협도 이 문제를 간절히 원했지만, 판권을 둘러싼 다른 주체들의 의견이 분분하여 추진도 못한 채 물러섰다. 직배사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판권에 대한 모든 권한을 다 가진 구조가 장점으로 작용한 듯하다. 성공한다면 전체 영화시장에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네마서비스 이원우 실장도 “P2P나 웹하드의 불법 다운로드를 막아보지만 전부 잡아내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단속만 할 게 아니라 불법 다운로드 사용자 중 10%라도 유료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시각의 접근인데 국내 회사들도 논의는 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 어느 업체랑 누가 먼저 하느냐의 문제다”라며 신중론을 폈다. 소니픽쳐스홈엔터테인먼트 구창모 상무는 “외화보다는 우리나라 영화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빨리 상영되는 극장을 제외하면, 편의성과 고르는 재미를 감안할 때 국내 관객에게는 가장 각광받는 윈도가 될 가능성이 높고 최적의 소통 방식이다”라고 기대를 밝혔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구 상무는 “기술적인 문제나 법률적인 요소들만 잘 정비한다면 극장 다음의 수익 윈도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투자라는 측면에서도 인터넷 다운로드 서비스는 인터넷 포털과 통신망사업자가 연관된 부분이기 때문에 사업의 가능성만 입증되면 거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합법적 다운로드’가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인 것이다.
인터넷 동영상 쟁탈전, 이제 시작이다
야후, CBS 등 인터넷 포털과 방송국들 본격적인 스트리밍 서비스 시동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는 비단 헐리우드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인터넷 포탈과 방송국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채널 ‘인터튜브’를 개설한 CBS는 인기 리얼리티쇼 <서바이버>를 방영할 계획이다. 동시에 인터넷을 위한 시리즈물을 별도로 제작하여 스트리밍할 계획이다. 모든 컨텐츠는 무료로 제공되며 광고로 제작비를 충당한다. ABC엔터테인먼트 책임자였던 로이드 브라운을 영입한 야후도 자체 동영상 컨텐츠 제작에 나선다. 기존 TV물과 뮤직비디오도 물론 제공된다. ‘웹 상의 모든 비디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목표로 하는 구글은 모든 사용자에게 업로드를 허용하고 자신의 컨텐츠를 판매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컨텐츠를 관람하려는 사람은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유료로 구입해야 한다. 찰리 로즈 쇼나 대학풋볼 중계 같은 유료 컨텐츠도 추가된다. 인디 프로덕션을 끌어들여 동영상을 제작하는 MSN은 TV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오피스>, <더 비기스트 루저>를 제작한 리베일사와 제휴를 맺은 상태. MSN도 모든 컨텐츠를 무료로 제공한다.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에 다른 메이저 영화사보다 늦게 참여한 월트 디즈니·ABC는 <로스트>와 <위기의 주부들>을 자사 웹사이트에서 스트리밍하는 동시에 아이튠을 통해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할 계획이다. NBC유니버셜도 아이튠을 통한 다운로드 사업에 동참한다. NBC유니버셜은 닷코미디(dotcomedy.com) 사이트를 통해 <새러데이 나잇 라이브>, <오피스>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퍼스트룩(Firstlook.com) 사이트는 NBC와 Sci-Fi&브라보 네트웍스가 만든 시리즈물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선보인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돋보인다. 삼성전자는 삼성멀티미디어스튜디오(SMS)라는 명칭으로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제공하며 연말 CJ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컨텐츠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영화, 동영상 강의 등을 자사 PMP사용자들에 한해 제공할 방침이다. 워너와 MBC의 서비스가 가시화되면 국내 포탈과 방송국업체의 대응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그룹의 인터넷 동영상 컨텐츠를 둘러싼 경쟁은 바야흐로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