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묵의 <얼굴없는 것들>을 본 뒤 우리에겐 ‘게이 로맨스’가 어림없는 것임을 알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1963년에 시작하지만, 실제 그 시작은 1950년대 초반으로 넘어간다. 에니스(히스 레저)의 아버지는 이웃 동성애자의 성기를 뽑아 아들에게 목격하게 한다. 그 1950년, 장 주네는 역사상 가장 섹슈얼하고 과감한 퀴어영화 <사랑의 노래>를 만들었다. 주네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감옥에 갇힌 죄수로 묘사한다. <사랑의 노래>의 두 게이가 기어코 꽃을 주고받는 데 성공하지만 감옥에서 벗어나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브로크백 마운틴>의 에니스와 잭(제이크 질렌홀)은 출구없는 사랑을 나눈다. 세상에서 숨어, 행여 들킬까 불안해하면서. 그리고 그들은 깨닫는다. 세상은 그들의 사랑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1983년, 잭은 결국 옛날 어떤 게이가 당했던 것과 같은 죽음을 맞는다. 두 게이의 죽음이 미국에서 보수세력이 맹위를 떨치며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던 시기에 벌어진다는 것이 사뭇 의미깊다. 강한 남자를 추앙하던 그 시절에 게이가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는 익히 짐작할 수 있을 터. 더 무서운 건 첫 번째 죽음이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반면 두 번째 죽음은 가면을 쓴 채 은밀하게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브로크백 마운틴>은 강력한 육체와 보수주의의 물결이 어떻게 연약한 인간을 죽였는지, 또한 사악한 자가 얼마나 영악한 모습으로 바뀌었는지 말하는 영화다. 죄지은 아비를 기억하는 에니스는 이제 아버지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죽어 사라진 자에게 맹세한다. 행복한 순간보다 피로 얼룩진 옷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기억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낮으나 굳은 목소리로 이상을 꿈꾸는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루어지지 못한 피의 결혼식에 바치는 진심어린 애가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와이오밍주의 수도는 존 포드의 마지막 웨스턴 <샤이엔의 가을>에 등장하는 바로 그 샤이엔이다. 웨스턴이 한 시기의 마지막을 고한 곳에서 전혀 새로운 ‘게이 카우보이 웨스턴’이 시작된 건 이상한 우연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DVD의 영상과 소리는 무난한 편이지만 스크린에서 경험한 시린 영상과 장중한 음악을 재현하기엔 조금씩 모자란다. 부록으론 네 가지가 있는데, 배우들이 배역을 익히는 과정을 다룬 ‘카우보이 되기’(6분), 감독의 연출을 조명한 ‘마음으로 연출하기’(8분, 사진), 두 각색자와의 대화를 수록한 ‘각본에서 영화로’(11분), 메이킹 필름 ‘이야기 나누기’(21분)는 영화의 명성에 비해 약소한 감이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