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삼성르노상’을 수상한 이도윤 감독의 <우리. 여행자들>은 매우 여성적인 느낌의 영화다. 한달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임신부가 남편의 애인과 기묘한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표현 못하는 두 여인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는 영화 <우리. 여행자들>의 이도윤 감독을 만났다.
-영화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에 쓴 시나리오다.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누군가가 위로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영화를 생각하게 됐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라면 서로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임신부도 남편의 내연녀도 마음 놓고 슬퍼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함께 길을 간다면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상처를 굳이 두 여인의 여정으로 풀어낸 이유는 뭔가. =부산에서도 내가 가기 전까지는 이 영화가 여성감독의 작품인 줄 알고 있더라. 내 이름이 약간 여자 이름 같고, 영화도 여성의 느낌이 많이 나서 그런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남자는 강아지 같고, 여자는 고양이 같다. 남자들은 항상 함께 모이면 서로 경쟁하고 다툰다. 강아지도 그렇지 않나. 하지만 여자들은 자신이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를 충실히 즐기는 것 같다. 상처를 치유한다는 면에서 여성성이 좀더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영어 제목이 <We. Trippers>다. 보통 여행자들이라고 하면 ‘Travelers’를 많이 쓴다. 하지만 ‘Trippers’에는 당일치기 여행의 의미가 강하다. 두 여인이 가는 여행도 당일치기에 가깝다. 일산에서 인천공항까지니까. 여행이라는 것도 단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통수단 안에서의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하나의 여행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찍을 때 본인의 성격이 많이 반영되는 편인가. =그렇다. 사실 가장 찍고 싶은 영화는 사랑 얘기다. 하지만 아직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못 찍고 있다. 내가 사랑에 대해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고.
-<가족>과 <방과후 옥상>의 조감독 경력도 있더라. =아는 선배의 추천으로 하게 됐다. 사실 연출이라면 내가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현장에 나가보니 다르더라. 영화의 전체적인 상황을 컨트롤하며, 매우 세부적인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아, 연출이란 이런 거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상할 거라고 예상은 했나. =전혀 못했다. 사실 폐막식은 안 보고 서울로 올라오려고 했는데, 폐막식에 참석하라는 전화가 오더라. 그래서 ‘관객상이라도 주는구나’ 생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늦게 이름이 불려서 놀랐지만. (웃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가 있나. =코미디영화를 준비 중이다. <디스코 2000>이란 제목인데, 고등학교 시절 나의 경험을 살려서 만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