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를 만나기 위해 간 곳은 칸의 한적한 고급 리조트였다. 칸영화제 레드 카펫 행사를 하루 앞두고,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리조트 해변 천막 안에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재킷을 몸에 두르고 앉아 있는 보아는, 무대 위에서보다 더 앳되고 발랄해 보였다. 보아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다리는 일본 기자의 수가 한국 기자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일본에서 보아가 누리는 스타덤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보아는 <헷지>의 한국과 일본 개봉판에서 헤더 역 목소리 더빙 연기를 선보였다. 두 나라의 언어로 한 동물(!)의 목소리 연기를 소화하는 일은 오랫동안 노래를 하고 일본에서 활동했던 그녀에게도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일본판 녹음을 먼저 했는데, 어디에 강조점을 두고 말해야 하는지, 말 속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발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평소에 말할 때와 다른 부분에 훨씬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웃음) 다만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고 좋아했으니까 활기차게 열심히 해 보이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한국판 녹음 때는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 주머니쥐인 헤더가 화를 내는 대목은 나도, 다른 분들도 대단히 만족한 부분이다.” 노래와 춤이 좋아서 3년의 트레이닝을 거쳐 국내 무대에 데뷔하고, 일본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보아가 이번 <헷지> 목소리 출연을 계기로 곧 연기에 도전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를 무척 좋아하기는 해서 한국에서 쉴 때는 극장에 자주 간다. 극장 직원들도 이제 날 보고도 그냥 시큰둥하게 반응하고(웃음)…. 하지만 연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노래를 부를 때와 사뭇 다른 다소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모범답안만 내놓는 보아는 자신을 ‘산업적 가치’로만 평가하는 시선에 대해서만큼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이니까 돈으로 환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제야 번쩍 깨달음이 왔다. 드라이브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보아는 이제 21살이 되었고, 더이상 소녀가 아니다. ‘넘버원’이 되겠다는 말 대신 “나는 나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그녀가 애틋해 보였던 것은 아마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헷지> 헤더 역 한국·일본판 더빙으로 칸 레드 카펫 밟은 보아
한국과 일본을 매료시킨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