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가의 한 작은 마을. 100년 전, 이 마을을 설립한 네명의 창시자를 기리는 행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마을 분위기는 축제로 들뜨기는커녕, 음산하다. 바다 위 배들에서는 이상한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해변가로 오래된 물건들이 떠내려온다. 안개는 마치 자욱한 가스 연기처럼 마을을 뒤덮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잔인하게 살해된다. 누군가는 불에 타고 누군가는 물에 빠진다. 6개월 만에 마을로 돌아온 엘리자베스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그것이 마을의 과거와 관련되어 있음을 눈치챈다. 도대체 이 마을은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 걸까.
1980년 존 카펜터의 <더 포그>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에서 안개는 끔찍한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보는 이의 긴장감을 적절히 분배시킨다. 안개 속에서 출몰하는 흉측한 몰골의 유령이나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듯한 안개 자체의 형상은 사실, 무섭기보다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영화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나 마지막 한방의 반전 대신, 끊임없이 귀환하는 영혼들과 이들의 억울한 과거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를 선조의 죗값을 후손이 받는다는 식의 인과응보의 교훈으로 받아들인다면, 영화는 매우 엉성하고 지루한 공포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미국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는 순간, 영화 구석구석의 많은 요소들은 흥미로운 텍스트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마을 설립자들의 잔혹한 음모와 그들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살해된 나병 환자들과 그 음모로 세워진 마을! 그 마을은 엘리자베스의 말처럼, 거짓말 위에 세워졌다. 누군가의 피와 땀과 죽음을 딛고 평화와 부의 역사를 만들어낸 그 마을에서 특정한 국가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기반성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콜럼버스 데이’에 상영된다면 더없이 효과적이고 정치적일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물론, 안타깝게도 <더 포그>는 할로윈을 겨냥하여 개봉되었고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 관객이 이 영화의 어떤 순간에 전율했을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