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환경에서 음악을 시작한 색소포니스트 브랜퍼드 마살리스는 욕심도 많고 오지랖도 넓다. 그는 피아니스트 앨리스 마살리스를 아버지로 둔 마살리스 패밀리의 장남이다. 트럼페티스트 윈튼 마살리스야 아는 사람이 더 많을 테고, 델피요 마살리스가 트롬보니스트, 제이슨 마살리스가 드러머다. 클래식 재즈 뮤지션으로서 그는 1986년 케니 커클랜드, 밥 허스트, 제프 테인 와츠와 함께 첫 쿼텟을 결성한 이래 현재 조이 칼더라조, 에릭 레비스, 제프 테인 와츠의 라인업을 이어오고 있다. 동시대 재즈 애호가들의 구미를 잘 맞추는 대중적인 하드밥 뮤지션이기도 하며, 프로젝트 팀 벅샷 르퐁크의 결성과 커티스 메이필드 헌정 앨범 참여 등이 말해주듯 솔과 R&B, 펑크를 넘나드는 퓨전재즈 뮤지션이기도 하다. 영화 <모 베터 블루스>의 음악을 만든 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
동생 윈튼이 정통 재주에 한우물을 파온 것과는 달라서 브랜퍼드의 정통 재즈 연주라고 하면 여전히 신뢰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케니 커클랜드의 유작 앨범으로 남기도 한 <Requiem>을 비롯해 현재의 쿼텟 라인업으로 발표한 전작들 <Footsteps of our fathers> <Romare Bearden Revealed>를 들어본 이라면 알겠지만 전통 재즈를 구사할 때도 브랜퍼드는 이제 동생에게 뒤질 바가 아니다. 최근 국내 발매된 재즈발라드 음반 <Eternal>(2004)은 그 내공을 확실히 각인시켜줄 인장이다.
총 7개의 트랙이 담긴 <Eternal>은 세곡의 스탠더드 넘버와 쿼텟 멤버들이 하나씩 내놓은 오리지널 넘버들로 구성돼 있다. 이 음반은 냇 킹 콜이 가사를 붙여 부르기도 했던 스탠더드 <The Ruby And The Pearl>로 시작해서 마살리스 본인의 오리지널 <Eternal>로 마무리된다. 감상의 느낌은 뭐랄까, 옷깃을 여미는 고독한 남자의 긴 도시 산책을 뒤에서 쫓는 듯하다. <Dinner For One Please, James> <Gloomy Sunday> <Eternal> 등에서 특히 빛나는 마살리스의 연주는 서정적이면서도 매우 남성적이다. 긴 호흡은 여유롭고 안정적이며 짚어내는 선율은 굵직하고 확신에 차 있다. 흑백누아르 시대의 남자주인공 같은 마살리스의 연주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조이 칼더라조의 피아노다. 칼더라조의 오리지널 넘버이기도 한 <The Lonely Swan>이 가장 좋은 예가 되는데, 전체적으로 칼더라조의 연주는 남자의 고독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여인의 손길 딱 그것이다. 동시대 최고의 재즈드러머 제프 테인 와츠의 센스 넘치는 리듬과 에릭 레비스의 겸손한 베이스가 더해 <Eternal>은 고독과 상념을 논하는 한편의 영화마냥 멋지게 흘러간다. 2004년 <다운비트>는 이 앨범을 그해 최고의 재즈 앨범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