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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구도 탈피한 헤어초크식 산악영화, <쎄로또레>

EBS 6월3일(토) 밤11시

산악인의 삶은 그 자체로 극적이다. 굳이 자연의 위력과 그 위력에 도전하는 인간이라는 이항적 구도를 언급하지 않아도, 끊임없는 도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은 평범하지 않다. 그래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높고 낯선 산과 그 산을 위태롭게 오르고 또 오르는 인간은 수많은 영화들의 단골 소재가 되어왔다. 할리우드는 방대한 스케일을 앞세워, 산과 인간의 대립구도하에서 좌절과 성공의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그 영화들은 거친 자연과 강인하거나 나약한 인간이라는 전형적인 틀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시적 긴장과 쾌감을 주긴 하지만, 언제나 그뿐이다. 그래서 그런 영화들은 산악인들을 실제로 찍은 다큐멘터리의 생생함을 따라잡지 못한다.

베르너 헤어초크의 <쎄로또레>에는 기존의 산악영화와 다른 무엇이 있다. 물론 그건 헤어초크가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극적 갈등과 해결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쎄로또레는 아무도 정상 등반에 성공하지 못한 죽음의 산이다. 세계적인 등반가 로치아와 암벽타기 챔피언 마틴은 이들을 취재하는 스포츠 기자와 함께 쎄로또레에 도착한다. 쎄로또레의 힘을 경험한 바 있는 로치아는 연일 지속되는 악천후가 가라앉길 기다리려 하고, 젊은 혈기로 가득한 마틴은 그가 못마땅하다. 결국 마틴은 로치아를 무시하고 다른 대원 한스와 함께 등반을 시작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스가 죽고 만다. 이 모든 상황에 절망한 로치아는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본국에 돌아온 마틴과 기자는 쎄로또레 등반에 성공한 것처럼 발표한다.

<아귀레, 신의 분노>로 널리 알려진 헤어초크는 매혹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기는 위압적인 자연,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 비극적 결말을 예정한 모험 등을 통해 신비하고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자신만의 근원, 본질을 탐구해왔다. 이 영화의 원제, <Scream of Stone>에서도 알 수 있듯, 헤어초크는 그저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산을 다루기보다는 자연 그 자체의 소리, 그 자체의 마력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자연의 외침을 뚫고 정상에 오르는 마틴과 로치아의 고독한 몸짓도 숭고하기보다는 강박적이고 처절하다. 외부 자연과의 대립관계 속에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인간이 아닌, 자기 안에 이미 ‘죽음’의 자연을 내재한 인간. 망상 속에서 홀로 투쟁하는 인간. <쎄로또레>에서도 여전한 헤어초크의 인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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