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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타이틀] 폭력의 메커니즘이 내뿜는 공포, <폭력의 역사>
ibuti 2006-05-15

2005년은 폭력에 관한 두 걸작이 탄생한 해다. 공히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제작된 <씬 시티>와 <폭력의 역사>은 그러나, 전혀 다른 길을 갔다. 원작자가 연출에 참여한 <씬 시티>가 폭력의 스타일을 완성한 반면, <폭력의 역사>의 연출 계약서에 사인할 때 원작이 있는 줄 몰랐다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만화적 상상력과 스타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투다. 그런데 사실 크로넨버그는 할리우드 제작사와 손을 잡으면서 <폭력의 역사>이 상업적인 영화가 되길 희망했고(그래서 칸영화제엔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완성된 영화의 겉모습은 평범한 장르영화에 가깝다. 고전 웨스턴의 영향 아래 있는 <폭력의 역사>을 짧게 요약하면 한 남자가 가족을 위협하는 갱스터에 맞선다는 이야기다. 과거를 잊고 살려는 남자를 악의 세계가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설정은 <서부의 사나이>와 <과거 때문에> 같은 웨스턴과 누아르에서 따왔다. 하지만 악당을 해치우거나 스스로 파멸하며 낭만적 감흥을 주는 고전적 결말을 크로넨버그가 따랐을 리 없다. <폭력의 역사>의 불안과 공포는 외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내부에서 나온다. 평범한 가장인 톰에서 갱스터 조이(라는 과거의 존재)로 그리고 다시 톰과 조이의 하이브리드로 정체성이 변형되는 주인공은 크로넨버그의 영화에서 익숙한 인물이다. 그가 분열된 자아와 억압된 과거로 인한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선택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췄으면 ‘폭력의 한 이력’으로 마감했을 영화는 아버지와의 동질화 과정을 겪는 아들과 증폭을 거듭하는 폭력의 구조를 거치면서 ‘폭력의 역사’에 대한 메타포로 기능한다. 선한 자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적의 방문을 폭력으로 응징하고 때론 적을 찾아가 폭력을 선사하는 미국과 폭력의 달콤한 매력에서 좀체 빠져나오지 못하는 할리우드의 얼굴을 그 속에서 나란히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폭력의 역사>은 폭력에 관한 명상이나 해부가 아니다.

<폭력의 역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되고 살아 있는 실체인 폭력의 메커니즘이 내뿜는 공포에 관한 영화다. 근래 이렇게 무서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DVD로 만난 크로넨버그는 영화의 정신분열증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본편과 삭제장면에서 자상하게 음성해설을 진행하는 그는 DVD 제작에 참여하는 자신을 두고 ‘진화’라는 크로넨버그식 표현을 쓴다. 영화의 순서에 따라 주제와 현장 모습이 고루 진행되는 메이킹 필름 ‘폭력의 여덟 막’(66분), 미국판과 유럽판의 차이 비교(2분), 칸영화제 스케치(9분) 등의 부록은 놓치면 후회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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