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해효를 쏙 빼닮은 주인공 알리(사이드 타그마위)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런던에 온 이집트 청년이다. 식당 웨이터, 주방 보조, 밸리댄스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생활은 늘 빠듯하다. 비자 만기일을 코앞에 둔 가난한 청년은 영국 여성과의 위장 결혼을 위해 돈을 모은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마릴린 먼로를 닮은 쇼걸, 린다(줄리엣 루이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시간은 정처없이 흐르고 시나리오의 성공, 행복한 결혼생활은 저 멀리에 있다.
이집트 출신인 칼레드 알 하가르의 <룸 투 렌트>는 감독 자신의 유학 시절 경험이 담긴 영화다. 그런 만큼 영화의 중심은 열정 하나만 믿고 낯선 땅에 스스로를 내던진 가난한 이방인의 악전고투에 놓인다. 친구들 집을 전전하고 경찰한테 오해받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야심이 있다. 그런데 참으로 비극적인 건,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습작들은 그다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자신이 본 실제 상황들에 약간의 살만 덧붙여 이야기를 구성하는 그를 보고 있자면,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라고 충고하고 싶어진다. 어찌됐건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불운한 청년에게 우연한 행운을 안겨주며 그를 결국은 타국에서 성공한 이민자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가난한 이민자가 오롯이 자기만의 힘으로 성공하기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재확인시키며 말이다.
문제는 영화가 너무 산만하다는 점이다. <룸 투 렌트>에는 동서양의 만남, 위장 결혼, 백인 여성과의 로맨스, 이민자의 일상, 영화적 열정, 동성애, 게다가 환생까지 한 영화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어디서 본 듯한 영화들 다섯편 이상이 별다른 교차점없이 결합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나마 이 영화를 가장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이 이야기를 영국에 사는 가난한 유색인 남성의 판타지로 읽는 것이다. 어떠한 경로로든 백인 여성과 결혼‘해’보기, 지적인 꿈을 이루기, 덤으로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지기, 무엇보다 이 모든 걸 노동하지 않고 획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