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원더풀 아메리카’라는 제목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계의 ‘기준’으로 군림하는 초강대국 미국에 ‘원더풀’이란 수사는 식상할 뿐 아니라, 불쾌하다. 그러나 ‘미 역사상 가장 특별했던 시대에 대한 비공식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원더풀 아메리카>를 읽어가다보면, 1920년대의 미국에 붙일 수사는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1929년 주식대폭락까지 20년대 미국은 잘 꾸며진 박람회의 풍경처럼 과거와 미래를 망라하는 미국의 전경을 세밀화로 그려놓은 느낌이다. 에이즈도, 9·11도 없었지만 20년대 미국에는 빨갱이 사냥과 부동산 투기, 대량생산과 과대 소비, 대통령 하딩의 스캔들과 마피아 등 ‘미국적’이라고 부를 만한 모든 것이 이미 존재했다. 아니 바로 20년대에 완성됐다.
1920년대를 다르게 말하자면, ‘현대’의 틀이 잡힌 시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욕망을 원초적으로 억압하는 금주법이 실행되어 마피아가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고,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현대판 종교재판이 열리기도 했다. 여성들은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신체의 일부가 드러나는 옷을 입었으며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섹스도 마침내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무례하고 방종하다고 몰아붙였지만,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겪은 젊은 세대에 대세는 넘어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20년대 들어 노골적으로 발언하고 자신의 자리를 점유하기 시작했다. 음악이나 건축 등의 문화이건, 마약과 이데올로기 등의 정신적 유희이건, 주식과 투기 등의 경제적 착취건, 20년대에는 그 모든 것들이 온통 뒤섞인 혼돈의 시대이자 가능성의 시대였다. 그 혼돈은 정말 ‘원더풀’한 광경이다.
<원더풀 아메리카>라고 하는 책은, 그 시절의 기록이다. ‘Only Yesterday’라는 원제가 말하듯, 이 책이 쓰인 것은 20년대가 막 지난 1931년이었고 저자인 프레드릭 루이스 앨런은 사학자가 아니라 잡지를 무대로 활동하던 저널리스트였다. 세월이 흘러 20년대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뒤흔든 혹은 특징짓는 모든 사건을 모아 예리한 통찰력으로 묶어낸 책이 <원더풀 아메리카>였다. 그러니까 동세대적인 감각으로 1920년대를 바라본 관찰기인 셈이다. 동세대의 관찰기가 지금 읽어도 여전히 흥미진진한 것은, 저자의 감식안이 워낙 탁월한 덕도 있고, 지금의 미국이 당시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이유도 있다. 1920년대의 수많은 사건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고, 인간은 과거의 교훈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깨닫게 한다.
20년대 미국이 좀더 현명한 선택을 했다면, 세계는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되었을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세계라는 것은, 역사라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서의 현명한 선택 한두번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건과 선택과 생각들의 총집합으로서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원더풀 아메리카>는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