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부인을 잊지 못하고 그녀의 유령과 동거하고 있는 외로운 노인, 먹는 것이 유일한 낙처럼 느껴지지만 짝사랑에 어쩔 줄 몰라하며 밤잠을 설레는 뚱뚱한 경비원,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동성 연인의 변심에 가슴 아파하는 한 소녀, <내 곁에 있어줘>는 이렇게 세대별(노인, 청년, 소녀)로 구분된 허구적 이야기에 14살 이후 시력과 청력을 잃었지만 삶과 인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테레사 첸’의 실화가 더해진 작품이다.
하지만 <내 곁에 있어줘>의 독자성은 무심한 듯 진행되다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되는 다층적 내러티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허구적 이야기에 실화를 결합함으로써 허구와 실화 어느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했을 영화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즉 영화가 주는 감정적 울림은 전적으로 테레사 첸의 실화 덕분이긴 하지만, 그녀가 껴안을 수 있는 허구적 인물들의 상처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면 영화적 공감은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내 곁에 있어줘>의 오프닝은 마치 자메뷰(jamais vu)처럼 익숙한 장면이 새로운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에서 극의 주요 공간인 상점 문을 닫는 장면을 롱숏으로 보여주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 시작과 함께 이처럼 쓸쓸한 정서로 문을 닫아버리는 영화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실제로 편지, 인터넷 채팅, 휴대폰 문자서비스, 전화 그리고 노인의 음식 만들기까지 다양한 소통의 방식을 등장시키는 <내 곁에 있어줘>는 그렇게 닫힌 문처럼 소통이 차단되고 저마다의 상처가 곪아가는 인간사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언뜻 차이밍량의 영화를 상기시키는 세계관이지만, 그와 다르게 에릭 쿠는 테레사 첸의 실화를 통해 절망의 순간에 희망과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기적과 같은 순간을 이끌어낸다. 에릭 쿠는 테레사 첸이 경험하는 ‘침묵의 세계’를 영화 속에 창조하고 이를 관객에게 전이시킴으로써 그녀가 침묵과 어둠의 심연에서 발견한 삶의 혜안이 영화의 허구적 인물만이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관객의 상처까지 보듬기를 기원한다. 이제는 상투적 표현이 되어버린 절망, 사랑, 희망을 보여주려 했다는 <내 곁에 있어줘>는 그 상투성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참으로 아름다운 감동을 빚어낸 작품이다. 참으로.